박원순 아저씨가 사무처장이던 시절 업무차 참여연대에 갈 일이 있었다. 칸막이 사이 작은 책상에서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뒷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민원인 전화였던 것으로 추정됐다. 세상 때가 잔뜩 묻은 당시의 나는(원래 어릴수록 밖에 나가면 오만 때 다 묻히고 돌아다니는 법) ‘우와, 대표가 민원인 전화도 (저렇게나 오래) 받네. 대표실은커녕 버젓한 책상도 따로 없네…?’ 이런 생각을 했다. 참여연대의 첫인상, 그래서 참신했다.
그는 서울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하며 “전시성 토건 예산을 대폭 깎겠다”는 걸 첫째 약속으로 내걸었다. “공약을 누구와 함께, 어떻게 실천할지 고민하겠다”는 마지막 약속에 이르면 살짝 다정한 기분까지 든다. “저요, 저요” 할 뻔 했잖아. 안철수 개인에 대한 호감이 박원순에 대한 지지로 상당 부분 옮아간 걸 보면 또 한나라당이 짝퉁 박원순, 앗, 죄송, 박원순스러운 후보를 찾느라 우왕좌왕한 걸 보면 그의 출마는 위력적이다.
박원순은 ‘어떤 세력’을 대표한다. 시민사회운동 진영일 수도 있고, 기존 정당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일 수도 있다. 무당파라 불리건 시민세력이라 불리건 적어도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가진 이들이다. 나와 주변, 세상일에 관심 많고 크건 작건 실천하는 이들이다. 박 아저씨가 굳이 민주당과 거리를 두지 않는 것은 세력 확장 면에서도, 정치 혐오의 주범 중 하나인 배타성의 정치를 넘어서고자 한다는 면에서도, 세련됐다.
박원순은 ‘성공 경험’이 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입신출세했다는 개인의 성공 신화가 아니다. 사회운동가로서 변화를 먼저 읽어내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 희망제작소 등 그가 기획하고 집행한 활동의 목록을 보면 그의 나이가 ‘겨우(!)’ 50대 중반이라는 데 놀라는 사람도 많다. 꼭 두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우리는 감수성 많은 ‘감수왕’이나 애매한것을 정해주는 ‘애정남’을 뽑는 게 아니니까. 그는 정글 같은 선거전에 뛰어들었고, 민주당과 통합후보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녹록지 않은 공격을 받을 것이다. 선수 하다 감독 하기는 쉽지만 감독 하다 선수 하기는 쉽지 않다. 찬바람이 불면 머리카락이 떠날까 걱정하는 ‘두피이스트’의 한명으로서 그가 머리털 덜 빠지게 그 과정을 거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