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자인 조용헌 칼럼니스트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뜻을 고현정이 전해왔을 때 펄쩍 뛰어오르며 놀라지는 않았다. 몇 차례 대화를 통해 그녀가 속담과 고사성어의 맛을 즐기고 옛사람들의 문장을 애호하며 세상 저변에 복류하는 보이지 않는 기운을 긍정한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당한 장서가인 고현정은 애독서를 묻는 질문에 중문학자 이병한 교수가 엮은 한시집 <치자꽃 향기 코끝을 스치더니>를 망설임없이 꼽은 적도 있다. 집을 위로와 휴식의 그릇으로 조명한 칼럼니스트의 근작 <조용헌의 백가기행(百家紀行)>은, 최근 혼자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져 전에 없이 집에 관해 찬찬히 생각할 기회를 얻은 고현정을 끌어당긴 또 다른 계기였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쪽 사정이고, 고택과 사찰을 답사하고 기인, 달사들과 만나 글로 정리하기를 업으로 삼아온 인터뷰이로서는 배우의 프러포즈가 난데없는 제안일 수밖에 없었다. 계룡산에서 첫 섭외 전화를 받은 조용헌은 “영화는 몽환포영(夢幻泡影 꿈, 환각, 거품, 그림자)이 지배하는 색의 세계인데, 과연 공통분모가 있겠는가”라며 의아해했으나 곧 고현정의 출연작과 사주를 물어왔다. 인터뷰를 수락한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이러했다. “이거 굉장한 이종격투기가 되겠구먼.”
스스로를 이야기꾼이라 규정하는 조용헌 칼럼니스트는 불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스무살 이래 한·중·일 3국을 주유하며 현장을 답사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풍수와 사주명리학, 대체의학을 연구해왔다고 한다. 저서목록 중에는 주류사회를 떨치고 나가 자립적으로 삶의 양식을 정립한 인물들을 탐방한 <방외지사>, 한국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전통을 캐낸 <조용헌의 명문가>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 등이 있다. 만남을 기다리며 일람한 조용헌의 책은, 층이 다르다고 여겼던 세상의 대소사를 연결하는 재미를 알려주었다. 예컨대 차를 마시는 습관이 풍류에 그치지 않고 의식주에 차례로 영향을 끼쳐 하나의 혁명이 될 수 있는 이치를 풀어 보이는 대목이 그랬고, 폐습으로만 여겼던 3년상이 중년기에 이른 인간이 발길을 멈추고 죽음을 묵상하도록 하는 뜻을 담고 있다고 밝히는 칼럼이 그랬다.
<백가기행>에 소개된 각기 다른 이유로 아름다운 집 가운데, 두 사람은 충남 논산시 노성면의 명재 윤증 고택을 대화 장소로 정했다. 학문이 출중해 소론의 정신적 지주였으나 일생 벼슬로 나아가지 않았던 명재 윤증(1629∼1714)을 위해 계룡산 지맥 끄트머리의 야산을 등지고 제자들이 십시일반해 지어올린 집이다. 누가 들여다보든 한점 부끄럼없다고 천명하듯 담벼락의 호위 없이 나앉은 사랑채와 아담한 연못이 객을 맞았다. 명재의 12대손인 한국고택문화재 소유자협의회 윤완식 부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장마철 뒷산으로부터 마을로 흘러내리는 물살의 숨을 한차례 죽이는 혜택을 베풀고 겨울이면 명경으로 화하여 명재 고택을 한채 더 떠올리는 못이라 했다. 이날의 고현정은 상담하듯 조신했고 조용헌은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응했다. 칼럼에서 “체질에 불이 많아 서론이 길어지면 말허리를 자르는 버릇이 있다”고 쓴 구절을 읽었는데, 과연 결론부터 말하고 조건절을 뒤미처 붙였다. 흡사 <스타워즈>의 현자 요다의 어투가 아닌가 싶어 몰래 웃었다. 인터뷰이는 자신이 도사가 아니라 도사들을 만나는 사람일 뿐임을 분명히 했지만, 다탁을 가운데 두고 누마루에 단정히 마주앉은 두 사람을 보자니 어딘가 ‘무릎팍도사’의 미장센이라, 또 가만히 웃었다. 햇살이 수굿해질 무렵 고택을 찾은 이들에게 사인해주고 사진을 찍는 고현정을 바라보며 조용헌은 나직이 정리했다. “저게 다 보시(布施)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