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악마를 보았다. 하지만 악마는 충분히 처벌받지 않았다. 심지어 그 기억이 불과 채 10년도 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때 더욱 참담해진다. 법원은 썩었고 종교는 글렀으며 학원은 미쳤다. 우리는 여전히 저개발의 기억 속을 걷고 있다. 지난해 <부당거래> 이후 이처럼 관객으로 하여금 직접적인 감정이입으로 내모는 영화가 있었던가.
<도가니>는 자애학원을 둘러싼 아동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법정영화처럼 느껴지지만 핵심은 그것이 다뤄지는 방식과 과정에 있다. 그것은 벌어진 사건 그 자체보다 그것이 환기하는 현실과 연계된 사건들의 끊임없는 중첩이다. 말하자면 <도가니> 한편이 다루는 소재들을 모아서 <PD수첩> 수십회 분량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사립학원의 선생이 되기 위해 바치는 학교발전기금이란 뇌물, 학원 비리를 돈으로 눈감아주는 부패 경찰, 전직 판사 또는 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하여 처음 맡은 소송에 대해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전관예우라는 특혜, 저마다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성폭력 사건을 떠넘기는 시청과 교육청,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안하무인의 기독교 교단,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진실을 틀어막는 공권력, 그리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룸살롱에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더러운 남자들.
여기서 누구나 되묻고 싶어질 거다. 우리가 다 한번쯤 겪어본 일 아닌가요?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나요? 그런 무력함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도입부, 그저 멍하게 철길 위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꼬마아이의 심정으로 이끌 것이다. 그렇게 <도가니>의 힘은 종종 영화적이지 않은 순간과 맞닥뜨리는 어색한 흠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미개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공분(公憤)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