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하늘에 있다면, 관측할 수 있다면 어떨까. 지구와는 멀리 떨어진 미래 행성 나니예의 신은 “늘 가까이에서 행성 주위를 공전하시지만 그 크기가 너무나 작아서… 감히 그 모습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고로 나니예의 수도사들은 거대 망원경으로 신을 관측하는 과학자들이다. 그 중 논문을 쓰는 수도사 나물은 복음서에서 전해지는 신의 궤도에 실제로 신이 없다며 신의 궤도를 새로 계산, 교계에서 이단으로 몰리게 된다. 소설의 한 축이 도발적 신학이라면 다른 한 축은 인간의 처연한 존재론. 가정사가 복잡해서 언제나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고 살던 조종사 김은경(배명훈 독자라면 익숙할 그 이름)은 15만년 동안 냉동된 상태로 우주여행을 하다 나니예에 도착한다. 나니예는 애초에 은경의 아버지가 설계한 곳이고, 심지어 죽은 지 오래된 옛 연인과 똑같이 생긴 남자가 행성을 돌아다니고 있다. 은경은 자신의 과거에 끈끈하게 들러붙은 이 행성을 고민한다. 그리고 신도. 은경에게 나니예의 신이란 우주로 나갈 지점을 제공하는 탈출구다. 나물과 은경, 두 이단아들은 보수적인 종교와 정치 세력에 맞서 비행기를 몰고 행성을 종횡무진하며 신을 찾는다.
소설은 신학과 존재론을 다루긴 하나 유쾌하고 오락적이다. 능숙한 게임 설계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모든 규칙이 맞물려 돌아가도록 세심하게, 그러면서도 재미를 좇아 거침없이 하나의 우주를 만드는 설계자. 그래서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재미는 보장된다. 우리네 현실과 똑같이 돌아가는 종교와 정치의 권력다툼이 풍자적으로 그려지고, 고풍스런 붉은 삼엽기들이 펼쳐 보이는 현란하고 화끈한 비행전투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연상케 한다. 자칫 진지해질라치면 썰렁한 유머들이 터지면서 소설의 무게를 가볍게 해준다. 덧붙여 ‘다른 별에서 써가지고 온 것 같은’, ‘전혀 새로운 감각’ 같은 띠지 문구는 여전히 ‘일반’문학에는 SF가 존재하지 않아 경계문학 같은 단어를 빌려야 하는 한국 SF의 존재론을 보여주니, 이 소설이 나와서 반가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