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자. 질 르그랑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네가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Tu sera mon fils)는 프랑스영화의 온갖 클리셰를 통괄하고 있다. 프랑스, 보르도, 포도주, 드라마, 유산, 가족 등. 영화는 예상대로 시작부터 고풍스러운 프랑스 전통 포도주 저장고, 농장, 제조 시설을 보여주며 관객의 시선을 압도해버린다. 그러고 나선 그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만)본 엄청난 포도주들을 끊임없이 음미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아름답다. 정교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얄밉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네가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는 부자(父子)관계를 너무나도 보편적이고 (비)인간적으로 다루고 있어 온갖 이국적인 풍경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주인공들과 감정을 교환하게 된다.
포도주 농장 주인 폴(니엘 아레스트루)은 어느 날 자신을 도와 농장 포도주의 품격을 지키는 데 큰 공헌을 해왔던 팔래(palais: 프랑스어로 미각을 뜻하는 단어이지만 뛰어난 소믈리에를 지칭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프랑수아(파트릭 슈네)가 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대신해 농장을 이어갈 후계자를 물색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면 그의 옆에는 언제나 아들 마틴(로랑 드취)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폴은 친아들인 마틴의 ‘팔래’로서의 재능을 탐탁지 않게 여기며, 오히려 프랑수아의 아들 필립(니콜라 브리데)을 양자로 삼아 농장을 이어가게 하려 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아버지 폴 역할은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예언자>에서 눈빛만으로도 관객을 살떨리게 했던 코르시카 마피아 두목 역의 니엘 아레스트루가 맡아 다시 한번 존재감을 확실히 확인시켜준다(정말이지 길에서 진심으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랄까). 개봉 첫주부터 25만9225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네가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의 질 그르랑 감독을, 그가 프로듀서로도 활동하고 있는 에피테트 프로덕션에서 직접 만났다.
포도주만큼 관능적인 게 있을까
질 르그랑 감독 인터뷰
-어떤 계기로 영화를 구상하게 됐나. =간단하게 말해서 포도주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나는 포도주를 매우 좋아한다. 포도주는 서양 종교나 문화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 나는 포도주가 아주 관능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인간이 포도주와 맺는 관계는 우리의 모든 감각기관을 요구하지 않나. 시각, 촉각, 미각, 후각. 나는 포도주가 인간이 자연을 변형시켜 제조해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포도주를 만드는 사람들은 모든 방면에서 우수하고 예민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포도주 제조에는 엄청난 ‘돈’과 ‘(술)취함’이 있다. 이 모든 흥미로운 요소들을 다루어보고 싶었다.
-부자관계를 다루는 부분은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의 한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다. 주인공이 여행 중에 만난 한 노인이 “너 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아들이 될 것을 제안하는 장면이 있다. 나에겐 매우 감동적인 순간이었는데 숀 펜의 영화에서는 15초도 안 되는 순간에 지나가버렸다. 이 장면에서 느꼈던 감정을 발전시켜 보고 싶었다. 거기에 이야기를 덧붙여 자신의 친아들을 증오하기에 다른 이를 자신의 아들로 선택하고자 하는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구상하게 되었다.
-실제 모델이 있나. =정확히 포도주 제조를 하는 가족은 아니지만 자신의 친아들을 영화 속 폴처럼 대하는 노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아들은 영화 속 마틴과 같이 고개를 숙인 채 어쩔 줄 몰라하더라. 너무나도 충격적이라 아직까지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사실, 프랑스의 주요 포도주 제조 도메인이 서서히 가족 운영체제에서 기업 운영체제로 넘어가는 건 대부분 가족간의 불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너무 많은 돈, 지나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충돌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가장 아름다운 성 뒤켠에서 너무나도 추악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