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01년에 만들어진 영화다. 50대에 접어든 마쓰이 히사코가 불현듯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만든 두 번째 작품인 <소중한 사람>은 현재도 일본에서 꾸준히 상영되고 있을 정도로 마니아층이 두텁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제작비를 모으고 자신의 영화를 찾는 곳이라면 어디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던 마쓰이 히사코 감독이 한국을 찾았다. <소중한 사람>이 제작된 지 10년 만에 한국에서 정식 개봉 일정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토록 이 영화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중한 사람>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가족의 구성원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의 전형적인 홈드라마지만 억지눈물과 격려를 부추기지 않는다. 대신 삶에 대한 긍정과 타인에 대한 이해가 고난을 극복하는 가장 큰 힘이라고 속삭인다.
-2001년에 제작되어 일본에서 오랜 인기를 끈 뒤 10년 만에 한국에서도 정식 개봉하게 됐다. 감회가 어떤가. =일단은 큰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정식 개봉은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만드는 영화는 한번 보고 잊혀지는 소모품이기보다는 어느 곳, 어느 시대든 누구라도 볼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랐는데 한국에서의 개봉이 그것을 증명해준 것 같아 기쁘다.
-영화 <소중한 사람>은 고스게 모토코의 소설 <잊어도 행복해>를 바탕으로 한다. 소설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게 된 과정이 조금 특별하다고 들었다. =데뷔작 <유키에> 상영회를 하는데 <잊어도 행복해>의 고스게 모토코와 시어머니가 상영장을 찾았다. <유키에> 역시 알츠하이머병이 나오는 영화라 ‘삶을 뒤흔드는 알츠하이머병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잊어도 행복해>를 접한 뒤 현대의 모든 가족이 고민하고 있는 ‘치매’란 소재를 다뤄보고 싶었다. 결정은 했지만 일단 제작비를 모으는 데만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웃음)
-<소중한 사람>은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어머니가 바뀌니까 아빠도 바뀌었다”란 대사에서 특히 그런 부분들이 단적으로 느껴진다. 시어머니인 마사코와 며느리인 토모에가 서로 갈등을 겪다가 마음을 열 수 있었던 이유도 두 여자 모두 어머니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족 안에서 어머니의 영향이 실제로 굉장히 크지 않나. 나 역시 한 가정의 엄마고 여성이다. 일반 관객과 별다르지 않는 곳에 서서 영화를 만들다보니 일상생활에서 내 몸에 축적되어 있는 것들이 시나리오를 쓸 때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엄마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던 것 같다.
-원제이기도 한 ‘꺾어진 매화’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마사코에게 꺾어진 매화란 어떤 의미라 생각하나. =마사코가 꺾어진 매화에 대해 특별히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마사코의 인생 자체가 오히려 꺾어진 매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꺾어지고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그곳에서 다시 꽃을 피워내는.
-마사코가 토모에에게 하는 행동은 마치 사춘기 딸이 엄마에게 반항하는 모습과 비슷하더라. 그런 마사코의 응석을 보면서 아들보다도 어쩌면 며느리에게 더 의지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사람들도 자신이 가장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사람한테 짜증내고 화내며 관심받고 싶어 하지 않나. 인간이 분명 가지고 있는 부분이지만 치매를 통해 더 강한 욕구로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같이 한국을 방문한 요시유키 가즈코의 연기가 돋보인다. 요시유키 가즈코와의 작업은 어땠나. =시설을 같이 다니면서 요시유키 가즈코와 함께 취재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매는 이런 특징이 있어요’라고 말하지만 치매는 특징이 없는 병이다. 치매에 걸렸든 걸리지 않았든 인간은 슬프면 울고 화나면 화를 낼 뿐이다. 요시유키 가즈코는 그런 부분들을 잘 캐치하고 치매 걸린 사람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모든 것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연기를 해서 더 리얼하지 않았나 싶다.
-최근작 <레오니>는 어떤 영화인가. 일·미 합작영화라고 하던데.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100년 전 미국 여성에 관한 이야기였다. 일본 남자와의 사이에서 혼혈아를 낳은 미국 여성이 싱글맘이 되면서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게 된다. 100년 전이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차별을 견디지 못한 여성은 세살 된 아이를 데리고 더 폐쇄적인 일본으로 건너온다. 하지만 차별에 굴하지 않고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운다는 내용이다. 젊은 여성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무언가 느끼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