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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능란한 절제미, 그 연기의 맛

<푸른 소금> 송강호

<푸른 소금>의 송강호는 경계에 서 있는 남자다. 자신을 미행하는 괴한들을 공격하기 위해 순식간에 소주병을 맞부딪혀 깨트리는 짐승 같은 본능, 떠나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그 집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소년 같은 심성이 한 몸에 있다. 힘든 세상사에 지친 그는 계속 그 고향집에 머무르고 싶지만 옛 조직의 동료들은 자꾸만 그의 옷소매를 붙든다. 고향 동네에 조그만 식당이라도 하나 차려 조용히 살고 싶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의 몸에서 결코 피 냄새가 지워지지 않을 거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송강호가 연기하는 ‘두헌’ 자신도 그것을 안다.

오랜 세월 풍파를 견디며 육체에 새겨진 본능과 기질은 결코 육체라는 집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다. 방파제 난간에 걸터앉아 하루 종일 먼 바다만 본다. 그곳에 있으면 뭐가 보여서 보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본다. 그렇게 그는 바다를 보는 게 아니라 사실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는 것이다. 송강호에게 바다를 보며 무엇을 생각했냐고 물었다. “두헌이라는 남자가 혼자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까,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온 한 중년 남자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뭐 그런 생각들을 하며 앉아 있었다.”

조직을 떠난 두헌의 새로운 일상은 요리학원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배우는 것이다. 자신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공간과 상황 속에 던져놓고 과거의 냄새를 지우려 한다. 그런 그가 조직의 회합에 참석해 자신을 위협하는 라이벌 조직 보스를 공격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집어든 것이 포크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포크와 나이프, 한낮의 요리학원에서 그가 앞치마를 두르고 사용했던 조리도구가 결국 밤엔 그렇게 변한다. 아마 그는 어떤 식으로든 변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를 하고 조미료를 쳐도 결코 그 과거의 냄새를 지워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경계에서 떠도는 남자 두헌의 마음을 여는 것은 한 어린 소녀다. “<푸른 소금>은 두헌의 과거를 떠나서 그가 한 소녀를 만나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따라가는 영화다. 예기치 못한 만남에서 시작된 감정의 밀도가 서서히 커져간다. 그것은 두헌이 과거에 겪었던 어떤 사건들보다 더 크게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게 그의 얘기다. 이후 두헌은 조금씩 변해간다. 어린 여자친구를 위해 컴퓨터만큼이나 어려워 보이는 스마트폰의 사용법을 하나 둘 익히고 커피전문점에서 ‘달달한’ 커피를 주문한다. 오래도록 ‘일반인’의 삶과는 동떨어진 채 살아오다 세상이 변해가는 것을 소녀와의 만남을 통해 알게 되는 그는 참 귀여운 아저씨다. “거칠게 살아온 남자가 어떻게든 재미있는 얘기를 던지려고 애쓰지만 그래봐야 80년대식 썰렁한 농담이다. ‘개콘’의 첨단 개그는 알지도 못한다. 어린 여자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니까 일단 열심히 관찰하고 기억해둔다. 자기만큼이나 외로워 보이니까 푸근하게 감싸주고 싶고 다 맞춰주고 싶다. 느리고 낡아 보이지만 서서히 깊게 스며드는 게 윤두헌의 사랑법이다.” 그렇게 난생처음 두헌에게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달달한 나날들이 시작된다.

<푸른 소금>은 송강호가 가장 적게 드러내면서 보다 큰 내면의 소용돌이를 보여준 영화 중 하나다. 단순히 전직 조폭이나 어린 여자친구와의 달콤한 멜로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핵심이 거기 있다. 폭발하거나 가라앉거나 어느 한 극단으로 쉽게 치우칠 수 있는 캐릭터를 이처럼 능란하고 절제있게 표현할 줄 아는 배우는 드물 것이다. ‘역시 송강호!’라는 감탄사는 <푸른 소금>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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