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손 김치’ 사업이 승승장구를 거듭하는 가운데, 홍덕자(김수미) 회장은 22살 때부터 꼼짝없이 묶여 있던 출국금지령 해제 소식에 기뻐한다. 홍 회장은 김치 수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점점 안일해지는 아들 삼형제의 정신을 개선할 겸 일본 여행을 계획한다. 살림의 달인으로 거듭난 장남 인재(신현준), 넘치는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석재(탁재훈), 사소한 일에도 크게 흥분하는 경재(임형준), 그리고 많이 모자란 비서 종면(정준하)까지 홍 회장 일가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온갖 소동을 일으키더니 일본에 가선 예상치 않은 강도를 당하며 죽도록 고생하게 된다.
<가문의 영광> 시리즈가 <가문의 영광4: 가문의 수난>(이하 <가문의 수난>)으로 5년 만에 부활했다. 2002년, 2005년, 2006년 추석마다 개봉하여 총 15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대표적인 코미디 프랜차이즈물이다. 1년이 다르게 급변하는 한국영화계 트렌드 속에서 <가문의 수난>은 어떻게 기존의 웃음을 재창출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일단 <가문의 수난>이 선택한 것은 조폭 코드의 삭제다. 3편까지 지속되어왔던, 물리적인 칼부림까진 아니더라도 매우 센 수위의 입담으로 폭력적인 웃음을 선사했던 조폭 코미디로서의 정체성을 내려놓았다. 대신 해외로 배경을 넓힌 어드벤처 소동극을 선택했다. 80, 90년대 첫 번째 해외 나들이에 나선 한국 관광객의 촌스러운 매너를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들은 영화 초?중반의 유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착한 웃음’을 지향하는 <가문의 영광> 시리즈의 돌변이 성공적인 가족 코미디로 거듭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성인용 코드가 사라진 다음부터는 좀더 나이 어린 관객층을 겨냥한 듯 슬랩스틱과 화장실 유머가 튀어나온다. 형식적으로도 그 유머들은 요즘의 ‘대세’인 TV 예능 프로처럼 구성되며 익숙한 시청 경험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짜여져 있다. 모든 유머는 조각나 있고 시퀀스별로 당위성을 가지지 못한 채 따로 존재한다. 개개인별로 ‘캐릭터’를 만들어야만 하는, 그렇지 않으면 “방송이 장난인 줄 아냐”며 바로 퇴출당하는 예능인들처럼, <가문의 수난> 속 배우들은 느슨한 전개 속에서도 장면마다 ‘빵 터지는 지점’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문제는 방송에선 녹음된 웃음을 들려주며 시청자에게 ‘여러분 여기가 웃는 지점이에요’라고 친절하게 강요하지만 영화에는 그런 녹음된 소리조차 없다는 점이다.
<가문의 수난>에서 의외의 웃음 포인트는 효정 역의 현영이다. <가문의 영광2: 가문의 위기>에서 맏아들 인재의 소개팅녀로 카메오 출연했던 것을 계기로 <가문의 수난>에서는 일본에서 홍 회장 일가와 우연히 마주치는 바람에 불필요한 생고생을 겪는 캐릭터다. 처음엔 연약한 척 내숭을 떨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홍덕자 여사와 맞먹는 기대를 보여주며 서슴없이 침을 뱉고 식탐을 발휘하는 만화적 캐릭터가 맞춤옷처럼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