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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작은 영화관의 고군분투

비즈니스 클래스 영화관, 소극장의 대안으로 떠오르다

아스토어 라운지 극장

베를린의 소극장들이 사라지고 있다. 한때 서베를린의 중심가인 ‘쿠담’엔 스무개가 넘는 크고 작은 극장들이 명성을 다퉜지만 지금 살아남은 곳은 시네마 파리스와 아스토어 라운지 두곳뿐이다. 동베를린의 사정도 다를 바 없다. 코스모스, 베누스, 포룸, 뵈어제 극장 등 동독 시절 시민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 극장들이 문을 닫았다. 중심가의 극장이 없어질 정도니 동네 극장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통일 뒤 베를린에서만 무려 40여개의 영화관이 자취를 감추었다. 멀티플렉스 극장, 인터넷 다운로드, DVD와 블루레이 시장의 영향임은 두말할 나위 없겠다. 2006년 독일의 총 관객 수가 1억3600만명이었던 데 반해 2010년에는 1억2600만명으로 1천만명이나 줄었다. 특히 수도인 베를린에는 영화 말고도 박물관, 나이트 라이프, 각종 전시회, 언더그라운드 콘서트등 놀거리가 많다는 특수성도 관객 감소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인구 350만명의 베를린에는 95개의 극장과 270여개의 스크린이 존재하고, 요크 키노 그룹이라는 비교적 탄탄하고 규모가 큰 아트하우스 극장 기업 역시 건재했다. 베를린의 동네 아트하우스 극장 12개를 운영하고 있는 요크 키노 그룹은 7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모범사례이며, 2003년에는 ‘올해의 유럽 영화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하지만 요크 키노 그룹도 단골 관객에게 끊임없이 홍보활동을 해 가까스로 현상유지를 하며 멀티플렉스 상영관에 대항해 고군분투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베를린 극장의 전체수입은 늘었다. 3D 때문에 티켓 가격이 비싸진 동시에 디지털 기술로 영화제작비용이 절감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수익은 모조리 멀티플렉스의 몫이다. 아트하우스 영화관은 늘어난 극장수익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화 환경의 다양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공적, 사업체별로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말에는 독일 전국 4700개의 스크린 중 1800개의 스크린이 공적 자금의 수혜를 받을 예정이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독일영화진흥원(FFA)은 소극장의 존립을 돕기 위해 디지털 상영 장비의 재정비를 지원하고 나섰다. 베를린에서 아직도 크고 작은 아트하우스 극장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이런 공적 자금의 지원 덕분이다. 물론 정부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작은 아트하우스 극장을 돕기 위한 새로운 전략과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베를린영화제 집행위원회쪽은 영화제 출품작 공식 상영을 동네 작은 극장으로 돌리면서까지 작은 극장 살리기에 힘쓰고 있다. 베를린영화제 기간 동안 대형 극장에만 쏠릴 관객의 발길을 동네 소극장으로 돌리게 하려는 비책이다.

최근 베를린에서 작은 영화관들의 또 다른 대안으로 떠오른 건 고급화된 ‘비즈니스 클래스 영화관’이다. 2008년에 개관한 아스토어 라운지 극장의 성공과 함께 시작된 움직임이다. 서베를린 중심가 쿠담에 자리한 아스토어 라운지는 비즈니스 클래스 영화관의 선발주자다. 입장료가 보통 영화관의 두배인데도 주말엔 티켓이 매진되기 일쑤다. 편안한 자리에서 느긋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중장년층으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유서 깊은 초팔라스트 영화관도 이런 럭셔리 영화관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공사 중이다. 시문화재로 지정된 초팔라스트 영화관은 전통 극장식 영화관이다. 이런 고급 극장들은 20~30년대 유럽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서 좌석과 스크린 사이의 공간을 넓히고 계단도 옛 유럽풍으로 화려하게 꾸몄다. 가죽으로 만든 고급 좌석은 발 뻗고 누울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하게 놓여 있다. 이곳에선 우아하게 고급 레드 와인을 즐기며 영화를 볼 수 있다. 포츠다머광장 소니센터의 시네스타도 비즈니스 클래스 영화관으로 재보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