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책들에서 만난 재미있는 문장들을 소개하는 글을 쓸 생각이었다. <게코스키의 독서 편력>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고등학교’. 오늘까지도 이 말은 ‘인종청소’라든가 ‘치아 신경 치료’, ‘조지 부시’ 같은 말을 들었을 때처럼 가슴 조이는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웃기지 않은가? 당신이 이 문장을 읽고 웃을 수 있다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디 책 얘기만 하게 만드는 세상이어야 말이지. 지구 멸망 포스를 풍기는 날씨만 해도 무시무시한데, 들려오는 말들은 더하다. 며칠 전에 나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여를 호소하기 위해 일인시위를 했다는 통에 ‘일인시위’라는 단어가 애처로워 한숨지었고, 같은 날 “<고지전>은 국군을 바보 만드는 영화인 것 같은데, 혹시 감독이 왼쪽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았다. 오늘(2011년 8월18일)은 한진중공업의 조남호 회장이 청문회에 참석했다. 한예슬은 촬영장에 복귀했다. 신창원은 자살을 기도했고 중태에 빠졌다.
야구계에서도 큰 뉴스가 있었는데, 어제 시즌 뒤 자진사퇴를 선언한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을 구단이 오늘 오후 해고해버렸다. 몇달간 감독 재계약 문제로 미적거리던 팀 프런트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신속한 조치였다. 지난해 1위부터 4위까지를 한 팀 감독은, 이로써 모두 교체되었다. SK 와이번스는 김성근 감독 부임 이래 4년간 팀순위 1121이라는 성적표를 찍었고, 현재 3위다. 시즌은 아직 남아 있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비상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줄 알았더니,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음을 확인할 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밥벌이는 ‘갑님’을 잘 모시는 일과 관계가 있다. 웃기는 건 세상 모든 일에 갑이 있고, 갑 위에 갑이 있고, 갑 위의 갑 위에 갑이 있다. 승진을 해도 ‘갑님’은 등장한다. 또한 아래로 가도 그 아래가 존재한다. 갑을병정이라고 하지 않나. 위로도 아래로도 끝이 없다. ‘갑님’들이 우리를 환장하게 만드는 건 뭐든 휘둘러서 자신이 갑임을 확인받으려 든다는 데 있다. 뭐든 휘두른다. 짧은 문장, 긴 문장, 글씨 크기가 ‘좀 이상한’ 문서, 울린 지 세번 안에 받지 않는 전화, 세차게 내리는 비까지 을병정은 뒤집어쓴다. 세상 모든 것 중 ‘갑님’들이 무조건적으로 싫어하는 게 있는데, 그건 바로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다. ‘갑님’으로 나고 자랐다면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겠는데, ‘갑님’ 모시기를 통해 위로, 위로 오르다 보니 휘둘러야 그게 권력인 줄 알고 자존심 다치면 뭐든 휘두르려고 든다. 아무리 가진 게 많아 보여도 갑은 아니고 깝도 되지 못하는 그분들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 나오는 문장을 보내드린다. “거리에서는 두 어린 소년이 커다란 소리로 웃어젖히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소년들은 밤이 무섭기 때문에 일부러 크게 웃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