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차도 위에 쭈그려 앉아 있다. 주저앉은 폼이, 영락없이 알 까는 어미새다. 여자는 쌩쌩 달리는 차들을 향해 수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아무 일 없으니 제발 상관 말고 어서 지나치라는 표정이다. 이 여자가 백주에 벌인 낯뜨거운 소동을 입에 올리긴 좀 그렇다. 별 차이 없지만 차라리 조금 앞의 상황으로 되돌려보자. 이곳은 VIP 손님들만 받는다는 고급 웨딩숍이다. 결혼식을 앞둔 여성 릴리언(마야 루돌프)과 그녀의 친구들은 각자 고른 예식 드레스를 입은 채 입씨름 중이다. 특히 애니(크리스틴 위그)와 헬렌(로즈 번)은 들러리 주제에 자신의 결혼식인 양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입에 모터를 단 그녀들의 언쟁이 언제 끝날까 싶은데, 갑자기 예복을 입은 그녀들이 화장실로 앞다투어 달려간다. 화장실을 들여다보기 전에 꼭 심호흡하라. 위로 토하고, 아래로 싸고, 그야말로 가관이다. 급한 나머지 세면대 위에 올라탄 여자는 “용암처럼 쏟아져 나온다”고 울부짖고 있다. 뒤늦게 화장실에 당도한 또 한 여자는 친구의 머리 위에 토사물을 게워낸다.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은 일단 웃기고 본다, 는 사명을 똑같이 지닌 두 유머 종가(宗家)가 합심한 결과다. <40살까지 못해본 남자> <사고친 후에> 등 너저분한 루저들을 주인공 삼은 섹스코미디의 화신인 주드 애파토우가 제작을 맡았고, 최전선에서 퍽(fuck)과 쉿(shit)을 쌍권총처럼 쏘아대는 여배우들은 약 올리고 비꼬는 데 있어 천부적 재능을 지닌 미국 TV코미디 버라이어티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출신들이다. ‘그녀’들을 주인공 삼았다고 해서 더러움의 수위가 결코 낮지 않다. 둘도 없는 친구 애니와 릴리언의 대화 한 토막. 섹스파트너 이상으로 애니를 생각지 않는 나쁜 남자 테드(존 햄)를 흉보면서, 두 여자는 남성 성기를 소시지 다루듯 입에 올린다. 릴리언의 결혼식에 들러리로 설 친구들 역시 교양을 걸레처럼 여기는 캐릭터들이다. “온 이불에 정액을 싸질러놔서 담요가 뻣뻣하게 반으로 접혀!” ‘뇌를 염색하지 않고서야’ 세 아들을 둔 엄마가 할 소린가.
물론, 애니(와 그녀들)의 속사포 욕설과 무진장 배설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베프’ 릴리언의 결혼 소식을 들은 애니, 겉으론 웃고 속으론 울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다. 쿨하게, 살고 싶은데,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 남친에겐 도둑고양이 취급 받고, 직접 차린 빵집은 망했고, 월세도 내지 못해 머저리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릴리언의 결혼식 들러리 대표를 떠맡은 뒤론 헬렌이라는 눈엣가시까지 하나 더 늘었다. 릴리언과 알게 된 지 1년도 채 안된 헬렌에 밀려, 릴리언의 베프 자리까지 위협받게 된 것이다. 헬렌과 경쟁을 해보려 하지만 점점 진상 짓만 골라하는 애니는 급기야 릴리언의 신부파티 때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악악댄다. 릴리언과 등을 돌린 뒤 애니가 <캐스트 어웨이>를 보며 질질 짜는 건 당연하다. 무인도에 갇혀 울부짖는 건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만은 아니다. 애니는 자신의 SOS 신호를 듣고 출동한 경찰 로디스(크리스 오도드)의 따뜻한 배려도 내팽개친 뒤 궁상맞은 언행을 일삼는다.
이 요란한 소동극의 흥미는 그녀들을 실컷 조롱한 뒤, 그녀들을 뒤늦게 다독이는 이야기에서만 나오는 것일까. 이 영화의 특이점은 배면에 놓여 있어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데, (남성 입장에서 볼 때) 뭔가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이 일종의 힌트다. 이를테면 약혼식에 초대받은 애니와 헬렌의 마이크 쟁탈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승강이는 반복된다. 고소공포증을 가진 애니가 비행기를 탄 뒤 헬렌이 건네준 술과 약을 먹고 헤롱거리는데, 이건 헬렌이 경쟁심과 복수심에 불타 저지른 짓일까.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은 여자가 무엇을 원할 때, 남자와는 다른 식으로 말하는 점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그것을 원해, 라고 직접적으로 말한 뒤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라이벌을 제거하는 남성의 방식 대신 내가 아닌 누군가가 그것을 원한다고 돌려서 말하고, 또 원하는 것을 넣지 못하면 ‘당신 좋으실 대로’라고 돌아서는 여성들의 심리를 확인하는 건 소소하지만 놓칠 수 없는 재미다. 남 탓 하는 애니의 질투 혹은 자기 연민은 그래서 공감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