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도시 할리우드에 ‘태양의 서커스’가 온다. 매년 2월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장소로 유명한 할리우드의 코닥극장에서 태양의 서커스가 새롭게 준비한 쇼 <아이리스>가 지난 7월21일부터 프리뷰 공연을 시작했다. 태양의 서커스의 고향인 캐나다를 비롯해 뉴욕, 시카고, 라스베이거스 등 북미 유수의 도시들에서 장기공연을 기획해온 태양의 서커스는 2011년 이 공연으로 LA에 첫발을 디뎠다.
<아이리스>는 태양의 서커스 회장이며 경영자인 다니엘 라마흐가 ‘영화’를 주제로 한 쇼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한 뒤로부터 10년에 가까운 준비기간을 거쳐 탄생했다. 라마흐 회장은 공연의 주제가 할리우드영화에 국한되지 않는 “세계영화에 대한 오마주”임을 강조했다. <아이리스>의 부제는 “영화 세계로의 여행”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공연은 태양의 서커스가 이제껏 선보여온 고난이도의 애크러배틱과 공중곡예, 텀블링, 액션에 마임, 사운드 효과, 시각효과, 영상 등의 영화적 기교가 더해져 그동안의 공연과는 다른 면모를 드러냈다. 프랑스 출신 안무가이자 무용가, 무대연출자인 필립 드쿠플레가 총연출을 맡았고, 공연에 사용된 음악은 팀 버튼 감독의 오랜 작업 파트너이자 최근 20년간 할리우드 영화음악을 종횡무진으로 활동해온 대니 엘프먼이 작곡했다.
넓은 공터에 거대한 천막을 세워 360도 회전하는 무대를 만들거나, 3면이 막힌 전형적인 무대 공간의 한계를 타파해온 태양의 서커스는, 이번에는 코닥극장의 무대와 객석을 개조했다. 본래 3400석이었던 좌석 수를 2500석으로 줄여 시야를 확보했고, 무대를 아래로 13m가량 파내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공사에만 총제작비 1억2천만달러 중 4천만달러가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연의 제목인 <아이리스>는, 인간의 눈에서 ‘홍채’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아이리스(Iris)와 인간의 홍채를 본떠 만든 카메라의 조리개를 일컫는 ‘아이리스 다이어프램’(Iris diaphragm)에서 빌려온 것으로, 드쿠플레 감독은 <허핑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공연이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영화기술의 발달과 그 기술을 받아들여온 사람의 눈”이라고 말해, 제목과의 연결점을 분명히 했다. 이같은 연출 의도는 다양한 시각적 실험과 안무를 통해서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사용된 기법은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배우의 실루엣을 시간 간격을 두고 무대 뒤편에 설치된 스크린에 투사하는 것이다. 연속적인 배우의 동작 하나하나가 잔상이 되어 마치 필름에 감광되는 듯 검은 배경 위에 배우의 실루엣이 그려진다. 이를테면 연인에게 이별을 고한 뒤 떠나가는 여자 무용수의 발걸음이 한 발자국씩 그려지는 식이다. 특히 실제 배우의 움직임과 스크린에 나타나는 실루엣 사이의 시간차는, 촬영과 편집을 거쳐 상영될 때에만 만날 수 있는 영화의 속성과 실시간으로 연기를 감상할 수 있는 무대의 속성이 뒤섞여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줄지어 이어진 상자들을 동일한 의상을 입은 배우들이 한칸씩 차지하며 각기 다른 포즈로 잠시 머무르다 지나가는 안무는 영화 촬영에서 초당 프레임 속도를 재치있게 표현한 부분이다. 정신없는 블록버스터 촬영현장을 재현한 장면에서, 높다란 사다리 위에서 위태위태하게 조명을 교체하는 곡예 중에도 무대 한켠에서는 숨막히는 액션신이 펼쳐진다.
쇼의 클라이맥스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할리우드 신데렐라 스토리와 호텔 옥상에서 펼쳐지는 총기 액션신, 그리고 그 두 가지가 결합해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을 그리는 이른바 멜로드라마의 클리셰가 펼쳐지는 연속적인 세개의 장이다. 다소 분절적이고 해체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막과 막 사이에는 광대 격의 캐릭터 둘이 등장해 진지하거나 추상적일 수 있는 쇼에 웃음과 활력을 더한다. 특히 이 두 광대 캐릭터는 쇼의 마지막에 아카데미 시상식의 사회자로도 등장해 쇼 비즈니스와 영화계의 시상식 문화를 재치있게 풍자한다. 영화라는 미디어는 이 공연을 매개로 해체와 조립을 거쳐 객석을 떠나는 관객의 마음속에 새로운 모양의 입체로 남는다. <아이리스>는 2011년 9월25일 정식으로 막을 올린 뒤 10년간 장기공연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