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보고 저리 봐도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겠다. 컨버스 운동화, 국적 불명의 치약, 청색 테이프, 장화, 쟁반 등등….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냐고? 맞다. 그런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저 물건들이 어째서 한 책상 위에 있는 걸까. “모두 남대문시장에서 사온 거다. 컨버스 운동화는 신을 수 없겠더라.” 선반에서 물건을 차례로 꺼내던 홍대 근처에 있는 작은 책방 ‘유어 마인드’의 주인장 이로씨가 알려준다. 아내인 모모미씨와 함께 1인 잡지 <수상한 M>을 비롯해 비정기 간행물 등 다양한 독립잡지를 만들어 온 그가 또 무슨 일을 꾸미는 모양이다. “<남대문시장 다녀왔어요>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원래는 6월에 마쳤어야 했는데…. 100명의 사람들이 남대문시장에 가서 마음에 드는 물건 하나를 산다. 구입한 가게 위치 약도를 직접 그려 물건과 함께 우리한테 보내면 그걸 책으로 만드는 거다.” 한명의 필자에게 원고 하나를 부탁하는 것도 일인데 무려 100명이라니.
다소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프로젝트를 이로씨가 구상하게 된 계기는 그리 거창하지 않다. 이로씨는 말한다. “서울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우연히 남대문시장을 찾았는데 정말 없는 게 없더라. 그렇다면 100명의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라 책으로 소개하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100명일까. 10명 혹은 30명, 아니면 50명도 될 수 있잖나. “원래는 30명으로 생각했다. 진행을 하면서 100명도 괜찮겠다 싶었다. ‘유어 마인드 홈페이지에 가입한 사람이 3천명 정도, 트위터 팔로워가 3천명 정도 되는데, 둘 사이의 가입자가 많이 겹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참가자를 쉽게 모을 수 있었다.”
구상, 편집, 디자인 등 모든 작업을 컴퓨터 앞에서 혼자 한다고.
컨셉은 명확하게, 규모는 작게
그렇게 발을 뗀 <남대문시장 다녀왔어요>의 구성은 참 간단하다. 한 물건당 2페이지다. 앞페이지는 물건 사진, 뒷페이지는 물건 구입 가게 약도가 들어간다. 이외에 물건 소개글이나 참가자 소개, 사연은 전혀 안 들어간다. 이로씨는 “이미지로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독자는 그저 물건과 약도만 보면서 이 사람이 왜 이 물건을 선택했으며, 이런 물건도 있구나, 이걸 구입하기 위해 어떻게 찾아가지 등 여러 가지 상상을 할 수 있다. 그런 상상이 바로 프로젝트의 즐거움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자 왠지 부러워졌다. 이 꼭지도 글 없이 사진으로만? <남대문시장 다녀왔어요>는 현재 물건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단계다. 이때부터 이로씨가 혼자서 다 한다. 사진 촬영이 끝나면 그는 물건과 약도의 순서를 정하고, 편집을 하고, 디자인을 해서 인쇄소에 맡긴다. 그렇게 만들어진 200페이지짜리 책은 유어 마인드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100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11명의 일러스트레이터가 함께 만든 요리책도 유어 마인드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쿠킹 드로잉 북>이라는 제목으로, 올해 1월에 만든 1부는 6월에 이미 ‘절판’되어 흥행 검증을 마친 잡지다. 현재 진행 중인 2부의 주제는 야식이다. <남대문시장 다녀왔어요>와 마찬가지로 <쿠킹 드로잉 북>도 그리 대단한 계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로씨는 “여러 일레스트레이터의 그림을 모아서 책을 낼 때 중요한 건 하나의 주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들이 혼란스러워한다. 내게는 그게 요리였고, 요리뿐만 아니라 재료와 레시피도 함께 그려달라고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요청했다”면서 “컨셉이 명확하니까 작가들도 편하게 받아들이더라. 마감 기간은 한달 반 정도 주었다. 빡빡한 일정이긴 하나 너무 길게 잡으면 자꾸 수정할 것 같아서 그렇게 정했다”고 설명한다.
편집 역시 분명한 원칙대로 진행했다. 소개된 모든 요리가 요리 제목, 재료 소개, 레시피, 완성된 요리 순으로 구성됐다. 이로씨는 “톤을 일관되게 가려고 했다. 그래야 페이지를 넘기면서 학습이 되니까”라며 “요리는 거북하지 않은 순서로 배치했다. 앞페이지에 느끼한 요리가 나오면 뒷페이지에 매운 요리를 배치한다거나 서양요리였다가 중화요리로 넘어가는 식으로 말이다”라고 편집 방향을 설명한다. <쿠킹 드로잉 북>을 한장 한장 넘기다보니 이 잡지를 집에 두고 싶어졌다. 안타깝지만 이미 절판된 1부는 2쇄 계획이 없다고 한다. 아무래도 불안정한 잡지 수익구조 때문일 것이다. 이로씨는 “2쇄를 할 경우, 그 잡지가 전부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 아무래도 유통이 대형 서점에서 파는 책들과 다르다보니…”라고 말한다. 그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유통구조는 해외시장 개척이다. “그나마 우리는 유어 마인드라는 서점을 함께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독립잡지에 비해 사정이 괜찮은 편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유통은 너무 지역 중심인 것 같다. 올해나 내년에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릴 생각이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참가자들이 남대문에서 구입해 보낸 물건을 촬영하고 있는 이로씨. 그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이 많다"고 놀라워 했다.
이건 그림책인지 미술작품도록인지 아니면 미술잡지인지 헷갈린다. 혼자서 <SSE zine>을 3년째 만들어오고 있는 유영필 작가는 다 맞는 말이란다. <SSE zine>은 쎄 프로젝트에서 매달 온라인(www.sse-p.com)에서 열리는 전시 작품을 모아 발행하는 작품집이다. 작품집이라면 두꺼운 고급 양장본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책 가운데가 중철로 고정된 <SSE zine>은 잡지를 뜻하는 ‘magazine’ 에서 ‘maga’(큰, 거대한)를 뺄 정도로 작은 잡지다. 외려 미니 신문에 가깝다고나 할까. 유영필 작가의 설명을 들어보자. “대학 시절 디자인학과를 다니다가 중퇴했다. 미술전공자가 아니다보니 상업적인 국내 미술시장에서 활동하기가 어렵더라. 나 같은 비전공자 출신 미술작가나 비주류 미술인을 위해 온라인 전시회를 열었다. 온라인으로만 진행하면 왠지 가벼워 보이고, 진지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없는 것 같아 1인 잡지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작품집이라고 해서 작품을 그대로 옮긴다고 생각하면 큰일난다. 유영필 작가는 발행일로부터 최대 1년4개월 전부터 선정된 작가와 함께 전시할 작품을 함께 만들어간다. 컨셉도 함께 정하고, 작업하는 동안 그 과정에 대한 의견도 주고받는다. 또 퀄리티가 떨어지는 작품이 나오면 전시 일정과 잡지 발행일을 미뤄서라도 새로 작업한다. 이는 전시 작품은 무조건 신작이어야 한다는 <SSE zine>만의 고집이다. 이 점에서 편집장은 단순히 그림을 받아 책으로 엮는 게 아니라 큐레이터와 아트디렉터 모두 관장한다고 보면 된다. 작품이 완성되면 유영필 작가 혼자서 편집과 디자인 작업에 돌입한다. 편집의 방향은 간단하다. 원작을 있는 그대로 살리는 것. 표지 제목, 글자 크기, 종류가 매호 다른 것도 전시되는 작품의 컨셉에 따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인쇄도 집에서 직접 프린트한 뒤 스테플러로 고정했지만 지금은 전부 인쇄소에 맡긴다고 한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 혼자서”
다른 독립잡지와 마찬가지로 유영필 작가의 고민거리 역시 잡지의 유통이다. ISBN(국제표준자료번호제도)에 등록되지 않은 것도 물론이고 책의 크기가 워낙 작고 얇은 까닭에 대형 서점에서 팔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일반 카페에 두고 팔고 싶은 마음은 없다. “많이 판매가 될 것 같지만 전시로 보여지는 게 아니라 팬시 상품으로 보여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리하게 판매처를 늘리기보다 아트 성향이 강한 숍을 위주로 유통하고 있다.” 그나마 최근 뉴욕, 샌프란시스코, 일본, 런던, 불가리아 등 해외 여러 국가나 도시에서 <SSE zine>을 주문하기 시작한 것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온라인 전시를 하다보니 해외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갖더라. 앞으로 10월부터는 일본 작가를 시작으로 외국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진행할 것이다.” 해외시장을 개척했다고 해서 유영필 작가는 잡지의 규모를 키울 생각은 없다. “이런 잡지는 자본이 개입될수록 망하는 건 한순간이다. 그저 지금까지 해온 대로 혼자서 작은 잡지를 만들어갈 생각이다”라는 게 그의 말이다. 역시 신중한 움직임이다. 어떤 의미에서 1인 잡지 <빙글빙글>의 김동환 작가가 리사이클을 활용한 작업을 주로 해온 메아리에서 나온 친구들과 함께 준비하고 있는 <리드 매거진>과 국내외 사진작가들의 사진을 충실하게 소개하는 <이안> 역시 <SSE zine>과 크게 다르지 않는 제작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1인 제작 시스템으로 만들어지는 잡지들을 보면서 잡지를 하나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이참에 한번 해봐? 망원동 동네 맛집 순례나 주말 밤 시청한 해외 축구 리뷰 같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