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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전략에 대한 고민이 최고의 출발점
2011-08-25

<돗돗돗>부터 <롤로 프레스>까지 독특한 발상으로 새로운 문화 만들어가는 해외의 독립잡지

1번 <롤로 프레스>, 2번 <돗돗돗>, 3번 <베드포드 프레스>

최근에 독립잡지, 독립출판이라는 말이 눈에 많이 띈다. 기존 출판 시스템에서 자유롭고 개인 혹은 공동체에 의해 기획 제작되며 200~300부의 적은 부수를 찍고 작은 범위에서 유통되는 잡지와 출판물이 이 문화의 핵심일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일군의 생산자와 소비자 집단이 생겨났는데 그 중심에는- 이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듯한데- 디자이너와 디자인 학교 학생들이 있다.

국내와 마찬가지로 해외에서도 이런 문화는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다. <돗돗돗>(Dot Dot Dot)은 2000년 스튜어트 베일리가 디자이너들 몇몇과 함께 창간한 저널로 20호를 끝으로 지난해 말에 폐간되었다. 스튜어트 베일리의 말에 의하면 <돗돗돗>은 그래픽 디자인의 통상적 규범이나 글쓰기 방식과 거리를 둔 새로운 시각에서 그래픽 디자인의 가능성을 고찰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디자인에 대한 글은 많지만 디자인에서 나오는 글은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디자이너 몇몇이 저널을 시작한 것이다.

<돗돗돗>이 다소 야심찬 기획에서 시작되었다면 소박하게 친구들의 책을 만들면서 시작한 출판사나 잡지도 있다.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책을 만들다보니 가장 적은 비용으로 최고의 효과를 거두기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개발하고 이렇게 개발된 기술은 함께 공유하면서 급속하게 퍼진다. 여기에는 리소그래프(Risograph)라는 인쇄기로 찍는 리소 스타일이 있다. 일본의 리소사에서 만든 인쇄기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교회 주보 인쇄에 많이 쓰인다고 한다. 유럽의 디자이너와 디자인과 학생들이 이 기계로 책을 만들면서 유행처럼 빠르게 퍼졌다. 싸고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 이외에도 잘 사용하면 거칠지만 감성적인 느낌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어서 리소 스타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빠르게 보급되었다고 한다.

이 리소그래프를 활용해 책을 만드는 출판사들로 우르스 레흐니라는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롤로 프레스>와 <베드포드 프레스> 등이 있다. 구식 리소그래프 모델을 사용해 친구들의 작업을 책으로 만들면서 시작된 <롤로 프레스>는 가까운 사람들의 책을 출판하는 것 이외에도 이미 폐간된 책들을 주문자생산방식으로 출판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보통 200부에서 300부 정도 만들고 소량 유통한다. 반면 <베드포드 프레스>는 영국의 아키텍처 어소시에이션(Architecture Association)이라는 건축학교의 인프린트 출판사로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독립해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디자이너 작 키에스가 주도하는 일종의 출판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기획 총서나 저널, 일반 단행본 등 다양한 종류의 출판물을 발행하고 있다. 책을 매개로 디자인과 건축 담론의 중간 지대를 찾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리소그래프를 사용해 값싼 종이에 싸구려로 찍은 듯한 느낌이 이들이 추구하는 디자인과 건축의 실험적인 교배와 잘 어울린다.

독립이라는 형용사는 매력적이다. 어떠한 맥락에서든 그건 그 문화를 새롭고 신선하며 진실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지금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독립잡지들은 과거 우리가 인디나 독립문화로 호명되었던 일련의 문화 결과물들보다는 더욱 현실적이다. 감상주의나 문화적 가치에 의해 시작되었다기보다 뚜렷한 목적을 갖고 좀더 현실적으로 생존 전략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독립적’인 미덕을 가진 몇몇 잡지는 주류 출판물들과는 차별된 지점에서 무언가 읽을거리, 소장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물론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지만 말이다.

글: 임경용 더 북 소사이어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