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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을 깨는 감·수·성 (2)
씨네21 취재팀 사진 최성열 2011-08-25

개성과 참신함이 빛난다, 한국 독립잡지 베스트

무수한 독립잡지 중 주목할 만한 9권을 선정했다. 패션, 문화, 인물, 에세이 등 분야도 다양. 대중적인 것부터 실험적인 것까지 성향도 제각각이다. 잡지를 만드는 이들에게 이들 잡지를 발행하는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까지 모두 들었다.

공통질문

1. 왜 독립잡지를 만들게 됐나 2. 보람 3. 최고의 기사 4. 이상적인 잡지란 5. 평소 즐겨읽는 잡지. 이유 6. 변화하는 시장에서 잡지의 미래, 대안

<운동장 매거진>

“<운동장 매거진>은 발행자의 형편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발행되는 무크지입니다.” ‘형편에 따라’라는 말이 재밌다. 이 말을 조금 확대해석하면 <운동장 매거진>은 발행되는 시기도 잡지에 소개되는 내용도 발행자 겸 편집장인 강문식씨 마음에 달렸다는 뜻이다. 물론 경제적인 여력이 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지금까지 발행된 <운동장 매거진>은 정해진 판형도 지질도 없다. 제법 책꼴을 갖춘 것도 있지만 <운동장 매거진> 2호는 아예 제본이 되어 있지 않다. 모든 페이지가 수배전단처럼 만들어졌다. 앞면엔 그림이 있고 뒷면엔 인상착의와 사건경위 등의 글을 손글씨로 실었다. 늦은 아침밥을 위해 엄마가 남겨놓은 메모와 반찬 사진들로 구성된 2.5호도 파격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단지 파격적이라는 이유로 <운동장 매거진>을 추천하지는 않는다. 휘갈겨 쓴 손글씨로 찬찬히 읽어보면 꽤 진지한 대목이 많다. 2년간의 군대 시절 기억을 모아 만든 <운동장 매거진> 1.5호가 특히 그렇다. 군필자들에게 특히 추천한다.

<운동장 매거진> 강문식 편집장

1. 학교에서 받는 교육이 지루했다. 스스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학교에 방을 붙여 참여하고 싶은 사람을 모집했다. 재미 삼아. 2. 맨 처음 만든 <운동장 매거진>을 받을 때다. 아파트 현관으로 택배 아저씨가 들어오는 장면이 보이더라. 엄청 신났었다. 3. 특별히 그런 건 없다. 군 시절의 이야기가 있는 1.5호가 스스로를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1.5호에는 색상 선택이나 이런 것에도 다 나름의 의미가 있다. 오마주도 있고. 4. 사실 내가 만든 잡지는 잡스러운 종이 뭉치의 의미에서 잡지인데 일반적인 대중 잡지와는 많이 다르다. 이상적인 잡지라… 어렵다. 잘 모르겠다. 5. 사실 잡지를 잘 안 보는 편이다. 그냥 잡지가 옆에 있으면 보는 편이랄까. 아, <구석구석>이라는 잡지를 본다. 글의 통찰력이 좋다. 6. 독립잡지쪽만 보면 몇년 전에 잠깐 붐이 일던 시기가 있었다. 독립잡지를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느끼겠지만 신경쓸 게 많다. 그때 나온 잡지 중에 꾸준히 나오는 것들이 있다. 디지털 매체까지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꾸준한 자가 살아남는 것 같다.

<인큐베이터>

취미 삼아 혹은 좋아서 만드는 독립잡지도 있지만 <인큐베이터>는 그렇지 않다. 생업으로 잡지를 만든다. 다니던 회사를 비슷한 시기에 그만둔 자매가 의기투합해서 지난 7월에 <인큐베이터>를 창간했다. 언니의 퇴직금이 없었다면 시작도 못했을 일이다. 생업으로 잡지를 만들다보니 광고도 따내고 영업도 열심히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인큐베이터>는 독립잡지 중에서는 그나마 대중적인 편이다. 미술, 디자인, 건축 등 세분화된 전문 분야가 아닌 모든 장르의 예술을 다룬다. <인큐베이터>의 전략은 거창한 개념을 들먹이지 않고 예술가들의 일상과 소소한 고민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잡지가 <인큐베이터>다. <인큐베이터> 8월호는 7월호보다 많이 두꺼워졌다. 그래픽노블을 추가했고 해외 아티스트 인터뷰도 실었다. 홍대 인디밴드 가운데 가장 핫한 검정치마 인터뷰도 볼 수 있다. 9월호에는 희곡이나 소설도 추가할 생각이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인큐베이터>는 신인 예술가와 함께하고자 한다. 장르 불문하고 <인큐베이터>에 자신의 창작물을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지금 바로 이메일(lovemail@incubatormagazine.com) 보내시라.

<인큐베이터> 이명연 편집장

1. 언니는 패션 관련 업체의 비주얼머천다이저로 오래 일했다. 나는 기자 생활을 짧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언니는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고 나는 내가 관심있는 분야를 잡지에서 다루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했다. 2. 7월호, 8월호 모두 사서 봤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다는 독자의 말을 들었을 때. 오타마저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해주셨다. (웃음) 3. 8월호에 소개된 영국의 사진작가 찰리 엥먼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인데도 말씀을 잘해주셨다. 7월호의 타투이스트 이랑씨 인터뷰도 좋았다. 4. 예쁘고 재밌고 그리고 잘 팔리고 이사할 때 안 버리는 책. 5. <컬러스>를 즐겨 본다. 인터뷰도 좋고 비주얼도 괜찮다. 매번 참신한 기획을 하는 잡지다. 6. <인큐베이터>의 미래는 답답하다. (웃음) 개인이 출판하는 독립잡지가 잡지시장의 혁명을 일으키기는 힘들지 않을까. 다만 독립잡지는 주류 매거진이 다루지 않는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아브락사스>

상대적으로 독립잡지들은 디자인 전공자나 관련 업계 종사자가 많이 만든다. 실험적인 디자인의 독립잡지가 서로 경쟁하듯 등장하는 가운데 <아브락사스> 같은 텍스트 위주의 단아한 디자인은 오히려 더 눈에 띈다. <아브락사스>는 문학에 특화된 잡지다. 문학에 국한해 잡지를 만들지는 않지만 <아브락사스>의 시작은 분명 문학이었다. 김종소리 편집장은 등단에만 목을 매는 학생 작가들의 상황이 답답했고 이런 갈증을 풀어주는 매체로 <아브락사스>를 창간했다. 2009년에 시작된 <아브락사스>는 10호의 발간을 앞두고 있다. 계간지로 꾸준히 발간된 셈인데 김종소리 편집장은 꾸준히 잡지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를 재미에서 찾는다. “약간 노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를 테면 돈을 벌어서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놀 듯이 잡지를 만드는 일도 유흥비처럼 생각한다.” <아브락사스>를 만들면서 돈을 벌지는 못했다. 만드는 순간 손해를 보기 때문에 <아브락사스>의 제작비는 유흥비가 됐다. ‘유흥비’ 마련을 위해 김종소리 편집장은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리고 등단을 위해 신춘문예에도 도전하고 있다. “아직 심사평에도 오른 적은 없다”고 멋쩍게 웃지만 그는 이미 등단을 하고도 남았다. <아브락사스> 역시 엄연한 문예지이기 때문이다. <아브락사스>에 연재된 소설을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도 있다고 하니까.

<아브락사스> 김종소리 편집장

1. 문예창작과를 다녔는데 내 소설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인터넷에 올리는 것보다는 인쇄된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행사에 참가했을 때 팬이라면서 어떤 분이 오셔서 책을 사가셨다. 보람을 느낀 순간이다. 3. ‘서울, 어는 곳’이라는 4호의 기획이 좋았다. 특정한 한 장소를 소재로 삼아서 작업한 것이다. 4. 문예지를 본다. 그중에서 <문예중앙>의 디자인이 예뻐서 좋아한다. 가끔 <GQ> 같은 남성지도 보고 <씨네21>도 본다. 5. 결국에는 재밌어야 한다. 잡지는 소비되는 일회성 매체이다 보니 재미가 우선이다. 잡지는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는데 내가 만드는 잡지에 정보는 없지만(웃음) 어쨌든 잡지는 보는 재미,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6. 아이패드에서 구현되는 아이북스가 발표될 때 놀랐다. 지금 1인 미디어가 대두되고 있는데 미래에는 거대 기업의 몇 개 잡지가 독점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미디어를 만드는 플랫폼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픽>

무려 5년. 계간 <그래픽>의 발행인 겸 편집장 김광철씨가 홀로 잡지를 만든 시간이다. 김광철 편집장은 광고에 의지하지 않고 제도권의 잡지와는 다른 형식과 방식으로 <그래픽>을 꾸려왔다.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스스로 평가할 만큼 <그래픽>은 독립잡지계의 큰형님 같은 존재다. 발행 초반 국내 그래픽디자이너의 책상에 한권쯤 놓였던 <그래픽>은 최근에는 해외에서 더 많이 판매된다. 한호당 1200권 정도 판매된다. 네덜란드의 예술 도서 전문 유통업체 등이 <그래픽>을 유럽에 소개하고 있다. 해외에서의 매출이 더 높아지다 보니 <그래픽>을 보는 국내 독자뿐 아니라 해외 독자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다. 전세계적인 그래픽디자인 이슈를 좇는 것이다. 최근 발간된 18호는 최근 2년간 세계 곳곳에서 열린 워크숍을 소개했다.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있어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김광철 편집장의 말을 들으니 5년 동안 독립잡지 형태로 운영된 <그래픽>은 외양은 여전히 독립잡지지만 그 콘텐츠만큼은 메이저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픽> 김광철 편집장

1. 시간 여유가 있어서 뭔가 해보고 싶었다. (웃음) 혁신적인 잡지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2. 한국 디자인 커뮤니티 안에서 자리를 잡고 레퍼런스를 마련하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해외로 확장돼서 진출한 것도 보람된 일이다. 3. 아픔이 있는데 12호를 최고의 기사를 꼽고 싶다. 매니스터프(www.manystuff.org) 스페셜 이슈였는데 프랑스의 20대 여성이 운영하는 3년간의 아카이브를 지면에 그대로 옮긴 작업이다. 독자들의 선호도가 극명하게 갈렸다. 정기구독을 해지하는 사람도 있었다. (웃음) 4. <바자> <보그> 같은 상업잡지를 본다. 상업잡지의 최전선을 보면 사회구성원들의 취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5. 약간의 가벼움과 약간의 진지함이 적절히 기술적으로 섞인 잡지가 좋은 것 같다. 6. 독립잡지가 대안이 될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콘텐츠를 다루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 잡지를 만드는 조직의 구조도 이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가짜잡지>

그래픽 디자이너 홍은주와 김형재가 펴내는 비정기 출판물인 <가짜잡지>는 이름부터 특이하다. <가짜잡지>는 ‘가짜잡지’라는 제호를 가지고 순서대로 번호가 달려서 출간되기는 하지만 정작 만드는 사람들은 잡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름도 <가짜잡지>가 됐다. 2007년 창간한 <가짜잡지>는 홍은주와 김형재를 중심으로 디자이너, 예술가, 작가, 디자인 학교 학생 등이 참여하여 만든다. 잡지라기보다는 아티스트북에 가까운 형태인 <가짜잡지>에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층위만큼이나 다양한 장르의 실험적인 작품들이 실린다. 판매를 목적으로 창간된 것이 아니기에 <가짜잡지>의 발행 초기에는 블로그를 통해 예약주문 형태로 소규모 인쇄를 했다. 반면 지난해에 나온 4호는 디자인 관련 기관의 지원을 통해 처음으로 일반 인쇄소에서 인쇄했다. 홍은주 에디터는 “대량으로 인쇄하면서 독립잡지를 취급하는 서점에서도 <가짜잡지>를 판매할 수 있게 된 장점도 있지만 조금씩 인쇄할 때는 매번 조금씩 수정을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고 말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5호를 만들 때는 제작방식을 다시 고민하기로 했다. <가짜잡지> 5호는 ‘조만간’ 나올 예정이다. 준비기간이 길었던 만큼 더 다채로운 색깔의 디자인과 더 깊이있는 작품을 볼 수 있을 듯하다.

<가짜잡지> 홍은주 에디터

1. 시작은 물성을 갖춘 매체를 물리적으로 생산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내용이 아니라 형식을 먼저 생각했다. 모든 디자이너들이 상상이나 모니터 속의 설계도가 아닌 완제품을 만들어내길 열망하듯이 실물 ‘책’을 만들고 싶어 한 것이다. 2. 우리가 만든 책을 재미있게 봐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재미있었다고 말해주었을 때. 3. 갱의 ‘이 시대에 <만엔원년의 풋볼>을 읽는 인간은 어떤 인간인가?’(1호), 하성호의 “실은 너희들은 ‘모듈’ 가구다”(2호), 안아라의 ‘하성호 그대가 진정한 승자’(3호), 박선녀의 ‘관념 속의 처녀막’(3호), 최은화의 ‘바게트 이야기’(3호), 코준의 ‘인터뷰’(4호)가 기억에 남는다. 4. 잡지는 최근엔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이유는 읽고 싶은 잡지가 없기 때문이다. 정기간행물 중에서 구매하는 것은 <닷닷닷> 정도밖에 없다. 물론 사도 읽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다지 의미는 없지만. 5. 잡지와 ‘이상적’이라는 단어는 왠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긴 하다. 6. 조만간 많은 잡지들이 e-book 포맷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