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 인생의 잡지’를 선정하는 일이 있다면 주저없이 <월간팝송>을 꼽겠다. 그런 잡지가 있었던가, 갸우뚱할 분도 있겠지만 <월간팝송>, 줄임말로 ‘월팝’은 1980년대 초반 독보적인 대중문화 잡지였다. 인터넷도 없었고 신문에는 험악한 이야기뿐이었으며 TV는 흑백 화면처럼 칙칙한 시대였던지라 <월간팝송>이 전하는 영미권 팝음악계의 이야기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물론 이건 영화가 대중문화를 제패하기 전, 한국 대중음악이 트로트와 대학가요 사이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고 라디오가 청소년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점유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월간팝송>을 처음 접한 건 1981년 초인데, 그 전해 12월 암살당했던 존 레넌의 사진이 흑백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중학교에 들어갈 참이던 나로선 팝음악이라고 해봐야 빌리지 피플의 <YMCA> 정도밖에는 몰랐지만 이상하게도 그 잡지는 마음을 끌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뮤지션’과 ‘아티스트’들의 이야기가 왜 그리 관심을 끌었는지, 라이선스 음반이 발매되긴커녕 라디오에서도 소개되지 않는 음악들이 왜 그리 궁금했는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 확실한 건 <월간팝송>을 사면 한달 내내 들고 다니면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는 사실이다. 나중에는 외울 지경이 돼서 그렉 레이크의 키보드 연주는 유려함이 특징이고, 코지 파웰의 드럼은 대나무를 쪼개는 듯하며, 토미 볼란의 기타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따위의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문제는 당시엔 그들의 음악을 거의 들어본 적 없었다는 것이지만(아, 암기과목을 그렇게 공부했더라면!).
친구들도 한통속이었다. 한 친구는 오퍼상이었던 아버지를 통해 비틀스의 ‘화이트 앨범’이나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 같은 앨범을 공수해와 우리의 심금을 울렸고, 한 친구는 번역가인 아버지의 잡지 서가에서 퀸과 딥퍼플, 레드 제플린의 기사를 빼와 우리의 가슴을 두드렸다(물론 일본어 기사를 읽을 순 없었기에 사진만 뚫어져라 봤지만). 그러던 우리는 모종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우리만의 ‘월팝’을, 그러니까 음악잡지를 만들기로 한 거다. 중구난방의 편집회의를 거쳐 각자 기사를 쓰고 사진을 정성스레 오려붙여 만든 이 잡지는 학교 앞 문방구의 복사기에서 딱 3부 ‘한정제작’됐다. 지금은 그 잡지 제목이며 내용이며 기억이 까맣지만 당시의 야릇한 성취감은 아스라하게 떠오른다.
번성하고 있는 독립잡지에 대한 특집기사를 보니 가위와 풀로 잡지를 만들던 그때의 초심이 살아나는 것 같다. 이 눈치 저 눈치에 채산성과 효율성을 따져가며 ‘제도권 잡지’를 만드는 입장에서 부럽기까지 하다. 좋아서 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우리도 더 치열해야 할 것 같다. 언젠가 누군가가 <씨네21>을 ‘내 인생의 잡지’로 꼽으며 회상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