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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셜록은 셜록이다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 비채 펴냄

셜록 홈스는 예나 지금이나 인기다.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은 코난 도일이 추리 잡지에 소설을 발표하던 그 시절, 무수히 쏟아진 탐정과 범죄자들이 총출동한 단편집. 홈스의 유명세를 빌리면서도 차별성을 두는 것이 관건이다. 이름 좀 날린 탐정으론 구석의 노인과 마틴 휴이트가 있다. 구석의 노인은 카페 구석(!)에서 유유자적하다 미스터리로 남은 사건에 관해 나름의 완벽한 해석을 선보이는 안락의자 탐정. 마틴 휴이트는 난처한 상황에 몰린 지인을 돕거나 어뢰 설계도 도난을 막는 등 홈스 판박이인데, 성격이 부드럽고 사교적이다. 코난 도일의 처남은 홈스와 정반대인 뤼팽 스타일의 호쾌한 신사 도둑 래플스로 승부를 보려 했다. 홈스 팬이라면 셜록 홈스의 철자를 변형한 이름의 ‘헴록 존스’가 등장하는 단편을 놓치지 말자. 홈스의 수사 기법을 몽땅 그러모아 패러디한 코미디다. 참고로 뤼팽의 작가 모리스 르블랑은 멋대로 셜록 홈스를 작품에 집어넣었다가 항의를 받자 이름을 ‘헐록 숌즈’로 슬쩍 바꾸기도.

수록된 이야기는 총 30편. 값비싼 보석이나 여배우 실종, 유언장 바꿔치기가 단골이다. 기차를 이용한 트릭이 자주 나오고 남미 등 당시로선 유럽에서 멀게 여겨진 지역에 대한 이국적인 호기심도 엿보인다. 당시 추리 잡지들은 부르주아 계층의 새로운 오락이었다 하니 그들 입맛에 맞는 가십성 소재들이 많이 쓰였으리란 생각이 든다. 옛 소설들인 만큼 현대의 정교한 트릭을 기대하긴 어렵고 대신 이제는 빈티지하게 다가오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 풍광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에드거 앨런 포의 기괴한 보물찾기 <황금충>을 빼닮은 이야기 등 고전을 서투르게 모방한 작품들이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읽다보면 셜록 홈스가 갑(甲)이긴 갑이구나 싶다. 라이벌들이 총출동했지만 괴팍한 홈스 캐릭터나 티격태격하면서 정들어가는 홈스와 왓슨 콤비의 매력에 맞서긴 쉽지 않아 보인다. 추리 마니아라면 소장할 책. 추리소설 번역가로 유명한 고 정태원 선생이 기획, 번역을 맡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