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원장 이병훈)의 숙원 중 하나는 ‘제2보존센터’ 확보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상암동 건물 안에 영화필름을 모두 보관할 수 없어 그동안 성남 소재 국가기록원의 나라기록관 보존고 일부를 빌려 써왔다. 하지만 임차 계약은 내년 4월이면 만료된다. 대체 공간 마련이 시급해진 것이다. 계약을 연장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성남의 임시 보존고를 계속 사용할 수 있다고 쳐도, 2014년이면 필름 보유량이 기존 보존고의 크기를 넘어선다. 한국영상자료원 관계자는 “지난 5년 동안의 평균 수집량 증가 정도를 고려할 때 3년 뒤면 영상콘텐츠를 보존할 공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2014년까지 예상되는 필름 보유량은 2만2759벌(2011년 현재 2만233벌)로, 이는 수장고의 101. 5%를 점유하는 양이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급작스럽게 내놓은 호소는 아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3년째 ‘제2보존센터’ 신축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애써왔다. 지난해 이 사안을 보도하려고 했을 때, 한국영상자료원은 중요한 사안이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기획재정부의 예산심의가 다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제2보존센터’ 예산을 따내지는 못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추가 보존고 확보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협력했지만 매번 예산 심의에서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밀려난 것이다. 해가 바뀌었지만, 한국영상자료원 관계자들은 또다시 같은 숙제에 매달리고 있다. 전과 달리 이젠 시간적인 여유도 많지 않다. 8월8일 기획재정부의 예산 심의 결과 발표를 앞두고, 한국영상자료원 관계자들의 속은 바짝 타들어가고 있다.
제2보존센터 예산이 확보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만의 하나 올해도 예산 확보가 실패로 돌아간다면, 한국영상자료원은 수집을 줄여야 하는 것일까. 한국영상자료원은 2007년부터 4년 동안 제출된 535편의 영화필름을 관리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유실된 줄 알았던 118편의 극영화와 기록영화를 발굴해냈다. 미국에까지 조사연구원을 19보내는 노력이 아니었다면 가장 오래된 극영화인 안종화 감독의 1934년작 <청춘의 십자로>, 신상옥 감독의 초기작 <꿈>(1955), 김기영 감독의 데뷔작 <죽엄의 상자>(1954) 등이 뒤늦게나마 관객과 만날 수 있었을까. 덧붙여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영상자료원의 적극적인 수집활동이 현재 보존고의 부족 상태를 불러왔다고 말해야 할까.
한국영상자료원의 ‘제2보존센터’ 요구가 무리한 욕심이라고 하긴 어렵다. 해외 주요 국가들의 아카이브들은 이원보존체계를 이미 구축하고 있다. 중국전영자료관의 경우, 2만5천편의 극영화를 보유하고 있는데, 필름보관소의 크기는 2만평에 달한다. 반면 한국영상자료원 필름보존고의 경우 임대 공간까지 합해도 500평이 채 안된다. 일본국립영화센터의 경우, 도쿄 본부 외에 사가미하라 보관고를 따로 두어 2만편의 극영화를 관리하고 있다. 베트남 또한 이원보존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1500평 규모의 보관고에 15만릴을 수용할 수 있다. 한국의 열악한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호주의 국립영상음향자료원, 프랑스의 국립필름아카이브, 영국의 BFI 내셔널 아카이브 등까지 언급할 필요가 있겠는가.
인프라 없는 문화대국, 유산 없는 영화대국은 성립되지도, 지속성을 갖지도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