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궁금해 미치겠다> A. J. 제이콥스 지음/ 살림 펴냄
<영장류 인간과(科) 동물도감> 무코다 구니코 지음/ 강 펴냄
날이 더워지면 입맛이 없어진다는 믿거나 말거나 격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어째서인지 아무리 아프고 기력이 없어도 입맛이 없어지는 경험은 해본 일이 없다. 기력없음을 잴 수 있는 나만의 바로미터라면 다름 아닌 책읽기인데, 일단 더워지기 시작하면 뭘 읽어도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이런 때는 경쾌한 에세이류를 읽는 것으로 응급처치를 한다.
그렇게 고른 책들이 <나는 궁금해 미치겠다>와 <영장류 인간과(科) 동물도감>이다. 짧은 에피소드를 엮은 책들이다. <나는 궁금해 미치겠다>를 쓴 A. J. 제이콥스는 자기 몸을 던져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선수다. 그저 ‘궁금해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직접 읽어보거나, 성경에 나오는 대로 1년간 살아보는 식이다. 그가 이번에는 아홉 가지 시도를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첫 에피소드는, 온라인에서 여자인 척 살아보기다. 제이콥스는 젊고 아름다운 보모에게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를 통해 남자를 고르는 일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한다. 보모에게 오는 메일을 제이콥스가 같이 읽고 답장을 써주는데, 미모의 보모에게는 수십, 수백통의 구애메일이 날아든다. 제이콥스는 본의 아니게 남자들이 여자에게 ‘껄떡댈 때’ 하는 갖가지 언행을 경험한다(그리고 각 사례를 책의 소재로 써먹는다). 기기묘묘한 온라인 구애의 현실을 읽다보면, 더위를 잠시 잊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다. 다 읽고 나면 제이콥스의 아내가 지닌 인내심에 감동하게 되는데, 9장에 이르면 제이콥스는 그 인내심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한달 동안 아내로 살기’를 실행에 옮긴다. 남편의 일상적 언행과 게으름 때문에 태산 같은 스트레스를 받는 지구상의 모든 아내들은 이 마지막 9장만이라도 꼭 읽기를. 다만 1장과 9장 사이가 약간 지루하다.
그래서 <나는 궁금해 미치겠다>를 읽던 중 잠깐 책을 덮고 <영장류 인간과(科) 동물도감>을 읽기 시작했다. TV 드라마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이자 소설가인 무코다 구니코의 에세이집인 이 책은 ‘유쾌한 인간관찰기’라는 부제처럼,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읽을거리다. 글 쓰는 사람들에게는 폭풍 같은 공감을 안겨줄 ‘오늘은 잘 쓰긴 틀렸어요’에서는 “머리가 가려워서”를 포함해 글이 안 써지는 기기묘묘한 이유들이 연방 등장하는데, 그런 핑계를 본인 스스로도 믿어버리는 글쟁이 특유의 예민함이 재미있다. 노안경을 맞춘 뒤 자잘한 글씨가 잘 보이게 되자, ‘거북 구(龜)’ 자를 일부러 찾아보면서 즐거움을 느꼈다는 말도 나온다. 택시운전사와의 승강이에서 시작해 안전하지 않은 안전핀 사건으로 화제를 전환시킨다거나, 지하철에 며칠이고 잠복해 치한을 직접 경찰에 넘긴 사연을 기억에서 끄집어낸다거나.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사연들이 참 많은데, 이 역시 한번에 한권 다 읽히지 않았다. 그래서 얻은 새삼스러운 깨달음. 아무리 재미있어도 더위에 장사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