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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이슈] 서울역의 불편한 진실
2011-07-25

길윤형 <한겨레> 기자

서울역이 8월부터 밤 11시 이후 노숙인이 역사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고, 들어와 있던 이들도 밖으로 몰아내겠다고 선언했을 때 “또 시작이군” 정도의 따분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수많은 서울시장들과 서울역장들이 노숙인들과 전쟁을 선언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서울역에 있으면 더운 여름에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고, 무료급식을 먹을 수 있으며, 수세식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경쟁에서 탈락해 삶의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 사람들은 계속해 서울역으로 몰려들 것이다. 이는 이명박 서울시장도 막지 못했고, 1960년대 ‘원조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도 막지 못했으며 정확히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조선시대 한성판윤과 일제강점기 때 한성부윤도 막지 못한 일이다. 언론들은 노숙인의 인권과 시민 불편 사이에서 다양한 기사를 쏟아냈는데,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한 노숙인의 뜻밖의 외침 때문이었다. “10년 넘게 서울역에서 살았다. 여기가 우리집인데 어딜 가느냐.” 문득 자녀 입학 또는 부동산 매입을 위해 위장전입을 한 뒤 한두주 만에 원래 그들이 살던 곳으로 주소를 옮겨간 고위공직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그럼 ‘서울시 봉래동2가 122-21번지 서울역사 2층 화장실 옆 계단’ 정도로 주민등록을 이전해줘야 하는 것 아냐.” 한 동료가 심드렁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우리 모두가 알면서 짐짓 모른 체하는 것들이 있다. 붕어빵엔 붕어가 없고, 권투선수의 글러브는 상대방이 아닌 내 주먹을 보호하는 것이며, 공원의 팔걸이는 방문객들의 편의가 아닌 노숙인들의 수면방지를 위한 것이다. 2004년 서울시는 서울광장의 문을 열며 화장실과 벤치를 만들지 않았는데, 이유는 빙고! 노숙인 때문이었다. 2005년 주영수 한림대 의대 교수팀의 연구를 보면 노숙인들의 사망률은 일반인보다 2.3배, 30대는 5.14배나 높다. 노숙인들이 역사 밖으로 밀려나면 그 수치는 더 높아질 것이다. 단속이 시작되면 노숙인들과 철도 공안들 사이에 충돌이 시작될 것이다. 2004년 7월 단속에 저항하다 공안들에 붙들려 질식사한 문아무개(당시 27)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랜 공방 끝에 그의 죽음은 철도 공안의 가혹행위에 의한 질식사라고 결론났는데, 지난 실수에서 아무것도 배우자 못하는 이들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난감한 일이다.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2주간 <한겨레> 길윤형 기자의 칼럼이 연재됩니다.

글:길윤형 <한겨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