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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수] 또 다른 내일을 위해

<고지전>의 류승수

필모그래피만으로 따진다면 류승수만큼 영화계에 공헌한 배우도 없을 것이다. 그는 <외출>과 <미녀는 괴로워> <우리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우정출연과 특별출연을 했다. 잠깐 모습을 보이는 사이, 이 ‘찰나’의 출연이 류승수 연기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더라. 내가 소모되고 있는 건 아닌가. 긴급조치가 필요했다.”

악어중대 중사 ‘오기영’은 류승수의 이런 고민에서 출발, 명확한 해답을 반영한 캐릭터다. 폼생폼사 따윈 없다. 추우면 인민군의 군복도 끼어 입고라도 살길을 찾는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 술과 노래, 유머에 일가견에 있어 전쟁의 공포로 얼룩진 부대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맏형 역할이기도 하다. “너무 가볍게 가지 않고 중심을 잡아야 했다. 장훈 감독에 따르자면 한 집안의 살림을 도맡는 집사쯤 된다.” 카리스마와 고뇌, 눈물과 상처가 난무하는 고지에서 발견한 인간애의 다른 이름, 오기영의 역할은 막중했다. 단순히 긴장을 풀어줄 역할로 상상한다면 그건 틀렸다. 감초연기가 흔히 불러올 수 있는 과장된 인물연출이 아닌, 류승수는 고지에 꼭 필요한 그만큼의 활기와 온정을 가진 ‘사람’으로 존재한다. “배우가 새로운 이름으로 선다는 거야말로 중요한 일이다. <달마야 놀자>의 명천 스님(묵언스님) 대신 이젠 ‘오기영’으로 불리고 싶다.”

<고지전>은 서른살, 대중에게 배우 류승수를 각인시켰던 명천 스님으로부터 꼬박 10년 만의 도전이다. 전쟁블록버스터라는 대규모 작품에 모두가 사활을 걸고 있는 것처럼 류승수에게 이 10년 만의 전환은 허투루 할 수 없는 가장 큰 프로젝트다. “그간의 나를 평가하자면 좀 애매한 위치가 아니었나 싶다. 주연으로 쓰기엔 부담되는 배우 정도.” 작품을 떠나 자연인으로서도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하는 나이. 그는 요즘 ‘제3의 사춘기’를 새롭게 세팅하고 있다고 한다. “잭 니콜슨이 <배트맨>의 조커를 새로운 상징으로 확립하지 않았나. 저예산영화를 비롯해 다양한 도전을 하고 싶다. 연기욕심이 어느 때보다 난다.” 경험을 토대로 하되 교만하지 않는 평형의 위치를 실천 중인 배우. 그의 오기영이 빛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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