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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바른 청년’의 틀을 깨다

<고지전>의 고수

질문을 던지면 한참 뒤에 대답이 돌아온다. 그 대답은 주어, 목적어, 서술어순으로 머릿속에서 몇 차례 다듬어진 형태인 듯하다. 대답하는 태도 또한 곧고 바르다. 어쩌면 이 사람은 선천적으로 바르고 신중한 사람이거나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되돌아보면 고수는 데뷔 때부터 늘 무언가를 지키려고 애쓰는 ‘바른생활 청년’이었다. 데뷔 초에 찍은 한 CF에서는 여자친구의 통금시간을 지켜주기 위해 “지킬 건 지켜야지” 하며 달렸는가 하면 드라마 <피아노>(2001)에서는 이복남매(김하늘)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아파하면서도 항상 옆에서 지켜주려고 노력한 흑기사였다. 악어부대원들을 이끌고 지키려고 한다는 점에서 <고지전>의 수혁 역시 고수가 가진 기존의 이미지에서 출발하는 캐릭터라 할 만하다.

“극중 수혁은 착하고 순수하다가 전쟁을 겪으면서 점점 냉혈한으로 변한다. 그런 수혁의 변화를 고수의 착하고 바른 이미지가 작용했을 때 효과적일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는 장훈 감독의 말처럼 고수 역시 시나리오를 읽을 때 2년 사이에 변하는 수혁의 양면성에 주목했다. “수혁이라는 역할이 정해진 채 시나리오를 받은 건 아니었다. 감독님께서 ‘어떤 캐릭터를 하고 싶냐’고 물어보시더라.” 마치 수혁이 전쟁 영웅처럼 묘사된 부분이 신경 쓰인 건지 고수는 다시 장훈 감독에게 되물었다. “감독님, 수혁은 마초입니까?” 장훈 감독의 대답은 “아니”였다. 고수는 말한다. “시나리오에 수혁이만 보이는 거라면 싫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난 뒤 애록고지라는 공간이 주인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래서다.” 어쩌면 데뷔 때부터 자신을 규정해온 ‘바른 청년’ 이미지와 거리를 두려는 생각도 출연 결정에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바른생활 청년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성장할 수 있었던 건 항상 감사하고 있다. 동시에 배우로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착한 모습이 아닌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나쁜 연기’를 해야 하는 건가. 그건 또 아니다. 다양한 면모를 가진 역할을 연기하다보면 나의 또 다른 면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다.”

입체적인 면모의 수혁을 표현하기 위해 고수가 꺼내든 건 ‘연기’가 아니라 ‘생활’이다. 그는 고창석, 류승수 등 선배 배우, 이제훈, 이다윗 등 후배 배우들과 함께 잘 어울리는 것을 이번 작업의 관건이라고 판단했다.

“연극하듯이 찍었다. 감독님께서 한 사람만 찍는 풀숏이 아니라 카메라를 고정해놓고 여러 사람을 한 프레임 안에 넣어 계속 연기하게 하셨다. 때로는 (류)승수 형이 자꾸 남의 캐릭터를 따라 써먹고 그랬는데, 우리끼리는 ‘월권’이라고 놀리면서 놀았다. (웃음) 그간 여배우와 단둘이 찍는 영화가 많아 아무래도 말과 행동을 조심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에는 남자들뿐이라 참 편했다.”

그러나 수혁이가 되는 작업은 촬영 초반부터 순조로웠던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배우가 그렇듯 고수 역시 캐릭터에 접근하기 위한 진통을 겪어야 했다. “아무래도 초반에는 모든 게 어색하잖아. 군복도 그렇고. 그때 연기한 수혁의 모습은 ‘수혁이는 이럴 것’이라는 수혁에 대한 나의 이미지였다. 감독님 표정도 뭔가 석연치 않았고. (웃음) 사람들과 섞여야겠다고 판단한 것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덕분일까. 수혁의 얼굴에는 순수함과 차가움의 대비만 있는 게 아니라 유머, 차분함, 미소 등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고수는 “내 연기에 한번도 만족한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겸손해한다. 다만, <고지전>의 수혁을 보면서 그간 보지 못했던 고수의 다양한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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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최희진 의상협찬:구치, 엠포리오 아르마니, 캘빈 클라인, 프레드, 코데즈컴바인, 반달리스트, 체사레파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