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CAF 2011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가 7월20일부터 24일까지 닷새 동안 CGV명동역,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애니시네마에서 열린다. <별의 목소리> <초속 5센티미터> 등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장편애니메이션 <별을 쫓는 아이>를 시작으로 300여편의 작품들이 관객과 만난다. 여기선 공식경쟁부문에 오른 단편 위주로 소개하지만 특별초청부문도 빼놓을 수 없다. 특별초청부문 시카프 시선 섹션에는 시그라프 2010년 수상작 및 SICAF 15주년 기념 역대 수상작 모음전이, 아시아의 빛 섹션에선 인도네시아 및 중국 애니메이션 특별전이, 제3의 앵글 섹션에선 미야자키 하야오와 라디살라스 스타위치 등 애니메이션 거장의 창작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등이 포진해 있다. 부대행사인 애니 토크에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직접 나서 혼자서 애니메이션 만드는 비기를 관객에게 소곤소곤 들려줄 예정이다(www.sicaf.org).
<사랑에 빠진 초코씨> Mr. Choco In Love
감독 페트르 마렉 / 5분50초 / 체코 / 2011년
초코씨는 주방에서 먹고 자는 워커홀릭 요리사. 주문이 밀려들어도 단칼에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만의 소유자다. 그런 초코씨가 갑자기 초조해졌다. 첫눈에 반한 여자 손님이 자신의 음식에 줄줄이 퇴짜를 놓았기 때문이다. 사랑의 레시피를 알지 못하면 큐피드에게 농락당하는 법이다. 초코씨가 기어코 만들어낸,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스위티 초콜릿은 동정을 구하기조차 민망한 무엇이 되고 만다.→ 타인과의 안전거리를 철칙처럼 고수하는 <46cm>(감독 테레사 반디니 외)의 청년도 실은 다른 이름의 초코씨다.
<소년과 야수> The Little Boy and the Beast
감독 요하네스 베일란트, 우베 하이트쇠터 / 7분 / 독일 / 2009년
소년은 엄마, 아니 괴물과 같이 산다. 소년의 엄마는 어찌된 일인지 뿔 달린 녹색괴물이다. 낮엔 으르렁거리고, 밤엔 홀짝거리는 흉측한 몰골의 괴물 엄마를 돌보느라 소년의 하루는 고단하다. <소년과 야수>는 아이의 눈으로, 괴물이 되어버린 어른들의 갈등 세계를 관찰한다. 언젠가 엄마는 괴물의 허물을 벗고 사람의 생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곁에서 잠자코 지켜보는 의젓한 소년의 시선이야말로 <소년과 야수>의 매력 포인트.→ 아이들은 마음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별천지를 그린다. 안경을 벗어던진 <안경잡이>(감독 장 클로드 로젝) 꼬마의 마술 같은 모험도 챙겨보자.
<수퍼 만두 vs 초밥맨> Super Baozi vs Sushi Man
감독 순하이펑 / 1분30초 / 중국 / 2009년
쌍절곤 만두와 장검 초밥의 목숨을 건 한판 승부. 대나무 식판 위에서 초밥 검객들과 맞부딪친 슈퍼 만두는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 것인가. 근육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통통한 몸매의 슈퍼 만두가 쌍절곤 묘기를 선보이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보다 닌자처럼 묘사된 초밥맨들의 허둥지둥이 더 눈길을 끈다. 머리에 고이 얹은 연어알들이 우수수 떨어지자 초밥맨들이 뒷걸음질치고, 공포에 질려 급기야 밥까지 싸는(?) 장면은 압권.→ 외나무다리 위에서 위험천만한 곡예를 선보이는 대담한 <모빌>(감독 베레나 펠스) 캐릭터들은 어떤가.
<그네> Swing
감독 쿼옌팅 / 3분55초 / 대만 / 2010년
병원에서 휠체어에 의지해 간신히 숨을 이어가던 노인은 다른 환자의 평온한 죽음을 지켜보게 되고, 자신도 죽음을 향한 그네뛰기를 천천히 시작한다. <그네>는 사건도 대사도 거의 없지만 주인공의 심정을 고스란히 옮겨내는 재주가 있다. 이는 삶과 죽음의 은유로 가득한 이미지 덕분인데, 생사를 건너뛰는 것이 즐거운 그네타기와 같지 않음을 깨달은 노인의 영혼이 다시 쇠잔한 육신을 찾아들 때의 쓸쓸함은 오래 곱씹어도 쓴맛이 난다.→ 사라지는 것들이 부르는 영원의 애잔한 노래는 <등불>(감독 스케가와 유타) 아래서도 들을 수 있다. 내레이션을 직접 만들어 붙여봐도 재밌을 듯.
<호접몽> Butterfly Dream
감독 장운하 / 8분32초 / 미국 / 2011년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꿈일까.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희미해진 혼란의 벌판에 내버려진 어느 게임중독자의 하루. 상대편 게이머에게 모욕을 당한 소년은 결국 손에 피를 묻히는 망상에 사로잡히고, 그 망상은 소년을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날카롭고 앙상한 선들을 얽어 인물과 배경을 만들어낸 솜씨와 <인셉션>처럼 꿈속의 꿈으로 이끄는 설정이 이목을 끈다. 끝이 없는 꿈의 ‘stage’ 혹은 포악한 게임의 ‘round’로 유인하는 살벌한 초대장.→ <참호에서>(감독 클로드 클루티에) 죽음과 백병전을 펼쳐야 하는 청년의 눈빛은 <호접몽>을 꾼 소년의 퀭한 그것과 겹친다.
<비센타> Vicenta
감독 샘 / 22분13초 / 스페인 / 2010년
20년 전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알프레도는 소문난 수전노다. 외투를 하나 사달라는 아내 바센타의 간청을 알프레도는 번번이 묵살한다. 알프레도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바센타는 돈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하자 결국 죽은 남편을 되살리기로 맘먹는다. 어수룩한 바보 조카의 힘을 빌려 남편을 되살리는 생체 실험은 알프레도를 유혹해 돈을 가로채려던 옆집 여자까지 가세해 복잡하게 꼬여간다. 클레이애니메이션.→ 아이들에게 스톱모션 기법을 활용한 클레이애니메이션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면 라트비아산(産) <호랑이>(감독 야니스 시메르마니)를 추천한다.
<바람의 이야기> Tale of the Wind
감독 클라우디오 조르뎅, 넬슨 마르팅스 / 11분48초 / 포르투갈 / 2010년
살바는 바람이 속삭이고 나무가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을 사람들과 떨어져 엄마와 외딴집에 살지만 살바는 외롭지 않다. 하지만 얼마 뒤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살바는 마녀로 몰린 엄마의 화형식을 목격하게 되고 몇년 뒤 살바 또한 같은 운명에 처한다. 살바의 얼굴에 살아서 어른거리는 빛과 꽃의 향기를 실어나르던 바람이 돌연 광기에 사로잡힌 이들을 향해 복수와 저주의 칼을 휘두르는 장면을 놓치지 마시라.→ 권위에 대한 어리석은 맹종이 무고한 희생을 부르는 마녀재판은 <머나먼 복음>(감독 보 마토르네)에서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