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개의 눈>의 변승욱 감독은 2006년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로 호평을 받으며 데뷔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세밀함이 엿보이는 멜로드라마였다. 2011년, 오랜만에 그가 선보인 두 번째 영화는 예상외로 공포영화다. 장르는 달라졌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존 공포영화의 룰을 따르면서도 전반적인 전개나 감성의 분위기에서라면 차분하고도 세심한 영화적 기질을 갖췄다. 변승욱 감독은 이야기의 힘을 유지하는 공포영화, 현실의 정서를 반영하는 공포영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야기와 현실과 공포 장르가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인지 그에게 들었다.
-<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개의 눈>(이하 <고양이>)의 영화적 포인트를 ‘공포’와 ‘정서’로 나누어 강조했다. =공포의 대상이 고양이인 영화다. 고양이와 같이 등장하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소녀도 있다. 우선은 이 모습들을 어떻게 외양상 무섭게 보일 것이냐의 문제가 있었다.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드러나는 미스터리한 두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었고. 고양이는 두 가지의 이미지가 있다. 물론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가 있다. 반면 고양이가 갖고 있는 반대 이미지는 섬뜩함 내지는 서늘함이다. 공포영화다보니 후자의 이미지를 차용해야 했고 그중에서도 눈빛, 울음소리 등 고양이가 가만히 있어도 풍겨지는 기운이랄까, 그런 것들을 디테일하게 잡아내려고 했다.
-정서의 면에서라면. =정서라는 면을 강조한 건 내가 기억하는 공포영화들은 볼 때는 무서운데 보고나면 공허했던 경험이 계기가 된 것 같다. 두 시간 내내 관객을 집중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볼 때, 결국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힘이다. 공포적인 요소와 이야기의 힘이 같이 섞여서 갈 때 공포도 배가되고 이야기도 더 흥미진진해진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공포의 근원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보자면 결국은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비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서 한번쯤 느껴볼 수 있는, 그리고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부분들, 바로 일상의 정서적인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고양이>에서는 공포와 더불어 정서가 균형을 이루었을 때 영화의 힘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이 폐소공포증을 앓고 있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살인이 일어나는 장소는 대개 밀폐된 곳들이다. 공포의 효과라는 면에서 이 둘을 짝짓는 게 어떤 점에서 중요하다고 보았나. =일상적인 공간, 익숙한 공간이 두렵고 낯선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가 따지자면 주인공이 갖고 있는 폐소공포의 상황과 맞닿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의문의 사건들도 그 어떤 밀폐된 공간과 맞닿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상적인 공간이 닫힐 때, 관객이 보고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도록 하고 싶었다. 공간적인 개연성이 있다면 관객 입장에서는 더 주의깊게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계단을 올라서듯 차근차근 전개되는 구조다. 차분하고 꼼꼼하다. 그런 반면에 일련의 사건과 죽음의 연쇄가 어떤 예상 외의 탄력적 긴장감을 일으키기보다는 마치 자기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등장한다는 인상도 받았다. =공포의 긴장감이 어떤 방식으로 쌓여가느냐의 문제였던 것 같다. 사건이나 미스터리가 단편적으로 쌓였다가 풀리는 방식보다는 점층적으로 쌓여가기를 바랐다. 공포 장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빠른 호흡을 취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빠른 호흡보다는 결국은 관객이 그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그 템포감, 그런 리듬감을 생각했다. 그런 템포, 리듬은 같은 공포영화라고 해도 전부 다를 거라고 봤다. 결국은 공포영화가 원하는 어떤 리듬감이 아니라 <고양이>라는 공포영화가 원하는 리듬감과 템포를 생각해봤다. 그 점에서 긴장과 이완의 적절함을 추구했다. 이야기의 흐름으로 봤을 때 약간 느리다고 느껴지더라도 전체적으로는 더 맞지 않을까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호흡이 느린 공포로 볼 소지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있어서는 너무 빠른 게 약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했다.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
-공포영화인데 어딘지 모르게 멜로영화의 흐름이라는 인상도 받았다. 이것이 공포영화 <고양이>의 독특한 점인 것 같다. 그건 이 영화의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다. 단순히 감독의 전작 때문에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이 영화의 어떤 흐름이 그런 인상을 전한 것 같다. =보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서 그럴 순 있다. 나의 원래 성향하고도 맞닿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무의식적으로 영화를 찍으면서 작용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를테면 후반작업을 하면서 음악감독과 상의할 때도 공포영화에서는 쉽게 쓰이지 않는 음악의 정서랄까, 그런 것들에 관해 말했다. 주인공 소연과 함께 미스터리한 사건을 추적하는 준석이라는 인물이 있지 않나. 이 영화의 메인 플롯은 의문의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지만 서브플롯으로 소연이 준석을 짝사랑하는 관계로 이뤄진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이 있을 때는 음악도 그런 정서적 부분들을 고려해서 쓴 것이 있다. 그런 건 확실히 의도된 것이다. 그런 것들 때문에 받은 느낌 아닐까?
-박민영은 ‘CG를 상대로 혼자 연기하는 것의 어려움’에 관해 토로한 적이 있다. 그걸 듣다가 그렇다면 이 영화의 감독에게는 ‘CG를 상대로 혼자 연기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배우를 연출하는 어려움’은 없었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해 봤다. (웃음) =고양이들을 상대할 때는 대부분 상대가 없다보니 박민영씨는 그냥 상대가 있다 치고 하는 연기를 많이 해야 했다. (웃음) 그러다보니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혼란스러워 많이 힘들었을 거다. 온전하게 상상력을 동원하면서 해야 하는 입장이라 고충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감정 표현에서 박민영씨가 생각했던 것과 내가 생각했던 것의 차이가 난 장면도 있었다.
-어떤 장면인가. =소파에서 소연이 실수로 손을 베고 피를 흘릴 때, 그녀가 다가오는 고양이를 확 밀쳐내는 장면이 있다. 거기서 박민영씨는 조금 더 차분하게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소연의 행동 수위를 높여서 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실제 고양이를 놓고 촬영할 수 없는 부분들이라 좀 애매했다. 그 장면에서 나는, 고양이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소연이 그걸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기 때문에 감정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영화 완성 마지막까지 CG 작업에 공을 들였다. 어떤 부분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썼나. =CG를 하기 어려운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물’하고 ‘털’이다. 그런데 고양이들이 떼로 등장하지 않나. (웃음) 3D로 고양이를 구현할 때 동작은 제대로 나오더라도 털이 부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 물론 그 부분은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나온 이야기이긴 하지만 개봉이 당겨지면서 CG팀에서 절대적으로 시간이 좀더 필요했다.
-고양이를 실제로 조련한 부분도 있을 텐데. =고양이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조련하기가 훨씬 어려웠다. 조련이 전혀 안되는 동물이라고 보는 게 더 맞는 말이다. 그래서 고양이 나오는 장면을 찍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우선 원하는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기다려야 했다. 먹이로 유도해보고 그것도 안되면 소리를 사용했다. 고양이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고양이들이 기분에 따라 내는 소리가 다르다. 기분이 나쁠 때, 좋을 때, 졸릴 때, 다 다르다. 그래서 미리 녹음해둔 고양이 울음소리를 현장에 가서 틀어줬다. 전문 조련사를 쓰려 했으나 국내에는 고양이의 동작을 유도할 만한 전문 조련사가 없었다. 일본영화 <구구는 고양이다>에는 독보적인 고양이 조련사가 촬영하는 동안 내내 함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게 연락까지 취했지만 일단 장기간 한국에 체류하는 게 어려웠고, 더 중요하게는 그 사람도 자신이 오랫동안 키웠던 고양이를 제외하고 새로운 고양이를 조련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연출부와 제작부가 고양이를 데려다 기르면서 지속적으로 돌보는 것뿐이었다. 정을 붙이는 거라고 해야 하나? (웃음) 연출부와 제작부 중 일부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준전문가 수준의 조련사가 됐다. 이건 정말 농담이 아닌데, 심지어 우리 영화에 고양이들을 공급했던 업체에서 진지하게 그 연출부와 제작부에게 자기들 회사의 직원으로 올수 없겠냐고 제안할 정도였다. (웃음)
-동물과 아이를 연출하기가 가장 어렵다는 오래된 농담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둘 다 나온다. (웃음) 아이로는 김예론이 나오는데, <여행자>에서 주목을 받은 김새론의 동생이다. =8살 예론이는 좋아하는 스탭과 싫어하는 스탭이 분명하다. “저 아저씨 있으면 촬영 안 해”라고 해서 그 스탭이 잠깐 빠져 있어야 할 때도 있었다. 머리를 길러서 묶은 남자 스탭이었는데 그게 이상하게 마음에 안 들었나 보더라. 처음에 캐스팅할 때는 우려가 많았다. 예론이 나이 또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이가 더 많은 아이들도 오디션을 많이 해봤는데, 그 친구들은 이미 연습으로 틀이 박혀 있었다. 100명도 넘게 오디션을 봤는데도 마음에 드는 아이를 못 찾았다. 그러다 우연히 새론이, 예론이 어머님이 세 자매가 노는 걸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보게 됐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세명이 자주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따라하면서 노는데, 그중에서도 막내 예론이가 제일 잘한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오디션을 한번 보자 싶었다. 처음에는 카메라 앞에 서니까 낯설어서 울어버리더라. 그래도 우리가 원하는 이미지에 어울릴 거다 싶었다. 가능성을 본 거다. 잘한 것 같다. 이미 훈련은 잘되어 있지만 본능이 떨어지는 게 보통인데, 예론이는 훈련이 없었는데도 상황을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본능적인 표현에 능숙했다.
-오랜만의 연출작이다. 장르도 달랐다. 어떤 경험이었나. =솔직히 첫 영화보다는 몇배 힘들었다. 그리고 공포 장르라는 것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있는 상태에서 유지해야 해서 매 장면 집중력과 밀도가 요구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랬다. 그것들을 촬영 내내 끌고 가야 하는 것이 어려웠다. 다뤄야 할 대상이 고양이라는 점도 어려웠고.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좋아해서 그 장르에 매료되어서 만드는 감독이 있다면 공포영화를 보면서 즐기기는 하면서도 그만큼 무서워하는 부류가 있지 않나. 나는 사실 후자에 속하는 편이다. (웃음) 물론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나 자신이 경험한 바가 있기 때문에 관객의 공포영화에 대한 무의식을 어떻게 건드릴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니까. 내가 영화를 보면서 무서워하니까 내가 왜 무서울까를 생각하게 되지 않나. 단점이라면 오랫동안 공포영화를 연구한 감독보다는 기술적인 문제에서는 조금 약할 것이고. 그런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전작에 비해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로운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