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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 원작과 영화
2002-01-09

그 풍성했던 판타지여

● “언젠가는 풍성했던 것들이 이젠 다 사라져버렸다.” 이것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피터 잭슨 감독의 수백만달러짜리 영화 <반지의 제왕>의 맵싸한 오프닝 멘트다. 충실함의 부재는 잃어버린 시간에 비하면 별로 화젯거리도 못 될 것이다. 영화화하기로 한 J.R.R.톨킨 컬트 3부작 중 상당히 무절제해 보이는 이 첫편에는 어딘가 애조띤 톤이 섞여 있다.

호빗 거실의 아늑한 한구석에서부터 어둡기 이를 데 없는 모르도(Mordor)의 척박한 산야에 이르기까지, 북구 요정에서부터 푸른 얼굴의 오르크에 이르기까지, 홍콩 장인들의 손을 빌려 디자인하고 장치한 마법사들의 전쟁에서부터 느릿느릿 결말에 이르기까지, 피터 잭슨의 각색과 영화화 작업은 확실히 그 나름대로 성공적이다. 역사적 유물이 마침내 삶을 얻은 것이다. 미국에서 <반지의 제왕>이 개봉하자 특정 연령대(그리고 어쩌면 특정 성별)의 비평가들은 스스로의 해리 포터를 얻은 셈이 돼버렸다.

정말, 컴퓨터그래픽 처리된 군중과 부패한 악귀들과의 전쟁과 연기에 싸이고 뒤틀린 이미지들을 보노라면, 혹은 간달프 더 그레이(알아보기 어려운 이안 매켈런)의 재치와 잠언을 듣노라면, 나는 톨킨의 상상 속의 세계가 12살 시절 내 머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었는가, 그리고 시간을 초월한 선과 악의 영원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제 와선 내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는가,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서 그 삼부작의 매력은 신기한 지도들과 새로운 언어들과 마지막권 끝에 수백페이지에 해당하는 부록에 의해 더욱 증폭됐었다. C.S. 루이스의 <나르니아>와 달리, 톨킨의 중간계는 특정 종교와 관련있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반지의 제왕>이야말로 신성한 텍스트 그 자체였다. 무슨 말이냐면 이 책은, 야구와 통계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추상의 기쁨을 향한 문학적 아날로그 세계를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다는 뜻이다.

그 당시 <반지의 제왕>의 영화화란 신성모독쯤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랠프 박시가 만든, 불운했던데다 이젠 거의 잊혀져버린 애니메이션 버전은 중심없이 흔들렸고, 절대악의 힘에 대항하는 보잘것없지만 용맹한 족속들에 대한 톨킨의 테크놀로지 이전의 판타지(pre-technology fantasy)를 나타내기 위해 잭슨은 온갖 디지털 마법을 다 부리고 지휘했다. 그 효과는 문학적이라기보다 자구대로의 기계적 해석에 가까우며, 고풍스럽다기보다 최신 유행에 더 가깝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 들인 공과 기술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불가능한 크레인숏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시각적으로 영역이 한층 확장돼 보인다. 부자연스럽게 푸르고 둥근 뉴질랜드의 풍경조차 불가능한 협곡과 계곡에 힘입어 보기 나아졌다.

톨킨의 종종 과장된 묘사들에 부응하는 잭슨 감독의 유일한 이미지는 아마도 떨어지는 낙엽들과 냇물처럼 흐르는 햇살(땅거미 속의 팬파이프 소리야 말할 것도 없고) 등을 포함할 것이다. 가장 강한 시퀀스는 실질적으로 단색이다. 무너진 신전들이 광활한 지하도시의 무너진 기둥들 사이에 세워졌으니 말이다.

나는 한때 <반지의 제왕> 신도였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이 책을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았었다. 이젠 더이상 그런 충실한 신도는 아니지만, 과거 이것은 확실히 종교의 면모마저 얻었었다. 이것은 60년대 반문화의 화려한 날개 위에 뿌려진 마법의 주문이었다. “프로도 만세” 배지들과 엘프어로 쓰인 반전 낙서와 구호들은 이제 어찌되었는가? “간달프의 가든” 등의 이름을 단 언더그라운드 신문들과 중간계의 노래들을 부르던 살짝 돈 듯한 사이키델릭 음유시인들은 또 어떻게 되었는가?

이 작품의 은유들은 확실히 적절했다. 이 세계가 호빗과 오르크, 혹은 리처드 닉슨을 일종의 우울한 골럼(<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괴물)으로 파악하고 있는 이들로 불쾌하게 나뉘어져 있다는 환각에 빠졌던 것은 나뿐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구상중이던 30년대 후반에 쓴 에세이집 <마법의 이야기에 관하여>에 따르면, “‘다른 세계’를 만들거나 꿈꾸는 것이야말로 마법(fairy) 이야기의 심장”이다. 어떤 이들은 확실히 톨킨의 우주적인 투쟁과 우리의 오늘날 투쟁에 어떤 평행선을 찾을 수 있겠지만 이 세계를 참조하고 싶은 생각은 <반지의 제왕>한텐 눈곱만치도 없을 것이다. 톨킨에게서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바람직한가”였을 뿐, “무엇이 가능한가”는 별 고려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새로운 욕망을 일으켜 깨어나게 했다면, 때로는 버겁더라도 때로는 만족시키기도 하면서, 그들은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