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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마리 이야기> 보고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다
2002-01-09

아리랑구슬, 내 인생의 첫 황홀

● 초등학교 3학년 때, <소년한국일보>에서 주최한 어린이 사생대회에서 무슨 상인가를 받은 적이 있다. 아마 그 부상(副賞)으로 입장권을 받아, 어머니를 모시고(라기보다는 어머니 소매를 잡고서였겠지)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시민회관에서 무슨 춤 공연인지를 보았던 것 같다.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어린 시절의 재주를 재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초등학교 이후 학창 시절을 통해 글쓰기로 무슨 상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던 걸로 보아(심지어 이런저런 백일장에 학급 대표로도 뽑힌 적이 없었던 걸로 보아), 내 원초적 감수성은 문기(文氣)에 있지 않고 색기(色氣)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내비치기 위해서다. 문기와 색기는 세속적으로 흔히 귀(貴)와 천(賤)에 상응하는 만큼, 이런 고백이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걸 숨기거나 덧칠한다고 해서 내가 귀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황홀감은 빛깔에서 왔다. 그 빛깔은 구슬의 빛깔이었다. 내 세대의 사내들이 구슬을 손에 쥐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이었다. 보통의 구슬이 나를 황홀하게 했던 것은 아니다. 나를 황홀하게 한 것은, 흔히 아리랑구슬(일 것이다, 내 기억이 옳다면)이라고 불렸던, 속에 파랑과 빨강을 어울러 박았던 구슬이었다. 그 구슬을 보고 있노라면, 온몸이 붕 뜨는 기분이 되며 현실감이 사라졌다. 나는 술과 담배 이외에는 마약류를 하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마 법으로 금지된 마약을 했을 때의 기분이 그와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시절 아리랑구슬을 보고 있을 때의 황홀감은 지금 돌이켜보아도 어질어질하다.

먼 기억의 아름다움은 제멋대로 강화되는 법이어서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아리랑구슬이 유년기의 내게 준 황홀감을 나는 그 이후로 다시 겪지 못했다. 자라서 섹스를 하면서도 나는 그때의 황홀감을 얻지 못했고, 아리랑구슬보다 더 요란한 빛깔들의 구슬을 보아도 내 발은 지표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세상과의 접촉면이 넓어지면서 내 마음의 결이 복잡해지고 합리적(다시 말해 현실적)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11월 말에 나는 워싱턴에 있었는데, 지인(知人)의 권유로 그곳 자연사박물관에 들렀다가 온갖 보석들이 진열된 방을 찾은 일이 있다. 광물학과 관련된 방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방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찼다는 요란한 목걸이에서부터 세상에서 제일 크다는 수정구슬에 이르기까지 별별 ‘기보요석’(琪寶瑤石)을 다 보았는데, 끝내 아리랑구슬이 내게 베푼 유년의 황홀감을 겪을 수 없었다.

<마리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어린 시절을, 어린 시절의 아리랑구슬을 생각했다. 물론 유년기 아리랑구슬의 황홀감을 누릴 수는 없었지만, 그 황홀감을 되새김질해볼 수는 있었다. 그것만 해도 기쁨이었다. 황홀감을 주었든 안 주었든, 구슬은 내 세대 남자들의 어린 시절과 떼어놓을 수 없는 장난감이었다. <마리이야기>에서 어린이들이 하는 구슬놀이를 유년기의 우리 세대는 삼각형이라고 불렀다. 세모 안에 구슬을 모아놓고 멀찌감치 그어진 금 밖에서 구슬 하나로 세모 안의 구슬들을 맞춰 세모 바깥으로 나가게 하는 놀이. 그 놀이보다 더 대중적이었던 것은 봄찾기 또는 알령구리(이 말의 어원은 도통 모르겠다. 하긴 ‘아리랑구슬’이든 ‘삼각형’이든 ‘봄찾기’든 ‘알령구리’든, 그것들은 죄다 1960년대 서울 아이들의 지역적 사회적 방언이었을 뿐인지도 모른다)라고 불리는 놀이였다. ㅗ자 형의 세끝과 교차점에 구멍을 파놓고 구슬을 그 구멍 안에 넣거나 상대방의 구슬을 맞추면서 그 구멍 사이를 오가는 놀이.

<마리이야기>를 보며 반추한 황홀감의 순간은 또 있다. 그것은 이 영화의 기본 색조인 파랑과 관련된다(그 색이 좀더 밝았으면 한결 좋았으련만). 내가 중학교 때 인상 깊게 본 영화가 <졸업>과 <태양은 가득히>인데, 나는 그 영화의 스토리나 배우들의 연기보다는 그 영화의 빛깔에 반했다. 그 빛깔이 파랑이었다. 내 친구인 화가 이현의 그림 앞에서 내가 자주 아찔해지는 것도 그녀가 즐겨 쓰는 파랑 때문이리라.

<마리이야기>를 보며 떠올린 시가 둘 있다. 내게는 이 영화가 그 시들을 영상에 담은 것 같았다. 하나는 최하림씨의 ‘이슬방울’이라는 시다. “이슬/ 방울/ 속의/ 말간/ 세계/ 우산을/ 쓰고/ 들어가/ 봤으면.” 다른 하나는 황지우씨의 ‘초로(草露)와 같이’라는 시다. “오 환생을 꿈꾸며 새로 태어나고 싶은 물소리, 엿듣는 풀의 누선(淚腺) 살아 있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의 이름을 부르며 살 뿐, 있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로다. 저 타오르는 불 속은 얼마나 고요할까 상(傷)한 촛불을 들고 그대 이슬 속으로 들어가, 곤히, 잠들고 싶다.”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소년 이름은 남우다. 남우, 나무, namu, namu@hani.co.kr, klarwasser@freechal.com. 잠시 고국을 비웠다 돌아오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나무는 사라지고 물만 남았네.▶ <마리이야기>는 어떤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