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마트나 할인 코너나 1천원에 뭐든 살 수 있다는 가게를 보면 불가사의할 정도로 싼 물건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소셜 커머스를 통해 반값 쇼핑도 일반화되었다. 대체 ‘제값’이라는 개념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싶을 정도다. 반값 쇼핑에 등장했던 물건의 경우,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제값을 주려니 영 아까운 마음이 들어 사기 꺼려지는데, 반값이 제값이고(설마 밑지고 팔겠어?) 원래 가격은 부풀린 가격 같아 보여서다. 싸서 좋다, 원래 값대로 내기는 아깝다 싶던 마음이 달라진 건, 그 제값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다. 반값으로 가격을 내리면서 이익을 유지하려면 어디에선가 손실을 메워야 한다. 그럴 때 가장 만만하게 칼질당하는 건 임금 아닌가? 이쯤에서 떠오르는, 쓰레기 소파 논란.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초저가의 소파 원재료는 건설 폐목재로, 소파의 천을 뜯어보면 그 안에 그야말로 쓰레기가 차 있더라는 이야기. 공장 관계자의 당당한 한마디. “싸잖아요.”
가격 파괴가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된 것은, 낮은 가격에 익숙해 있던 소비자들이 제값에 적응할 능력을 잃고, 나아가 낮은 가격을 위해 희생한 것이 그 자신의 일자리임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고든 레어드의 <가격 파괴의 저주>는 이 가격 할인 경쟁에서 소비자가 결국 패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역설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기득권층은 늘 승리한다. 본질적으로, 현대 서비스 경제, 금융과 소매업, 도박은 대부분 내부자가 이기는 게임이다. 그러나 금융부문과 달리, 월마트와 현대 라스베이거스가 사업을 행운에 맡기지 않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전세계가 더 많이, 더 많이 만들어 더 많이,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으면서 풍족한 가난을 겪게 된다. 현대의 경제 위기가 대공황 때와 다른 점은, 가계의 부가 침식되고 개인 빚이 막대하게 쌓이는 것이 단지 경제 위기의 징후가 아니라 성장 자체의 본질이라는 점이다. 소매업과 금융업, 해외 제조업에 의해 지탱되는 경제에서 쇼핑의 과잉 확대는 광범위한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가격 파괴의 저주>는 값싼 물건이 가능한 배경을 살핌으로써 ‘싼 것이 곧 옳은 것’이라는 현대의 신화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노조 설립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월마트, 전세계 물가를 움직이는 제조업의 심장 중국의 위기, 불법으로 유입되는 노동력이 없이는 현재의 가격 체계를 유지할 수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값싼 가격의 혜택을 본 모든 사람은 부메랑처럼 날아오는 부작용을 겪을 수밖에 없다. 가격 할인은 소득이 낮은 계층을 공략하는데 이들의 일자리는 비용 삭감을 위해 가장 먼저 희생된다는 말이다. 가격 파괴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노동에 대해 어떤 가격 정책을 가질 것인가일 것이다. 나아가 세계 평화와 환경 보호도 중요한 이슈임에는 틀림없지만 코앞의 칼은 밥벌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