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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진의 미드앤더피플] 불가능, 가능해지다
안현진(LA 통신원) 2011-07-15

<왕좌의 게임>의 원작 소설을 쓴 조지 R. R. 마틴

<왕좌의 게임>

※시즌1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난 6월17일 첫 시즌을 마친 <HBO>의 <왕좌의 게임>은 ‘미국의 톨킨’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작가 조지 R. R. 마틴의 연작 <얼음과 불의 노래> 중 1부 <왕좌의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TV시리즈다. 웨스테로스라는 가상의 대륙에서 칠왕국을 다스리는 왕좌를 두고 벌어지는 전쟁극에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하이브리드로, <HBO>의 명성에 어울리는 걸작, 또 하나의 전설이라는 찬사를 모으는 중이다. 긴 이름의 머리글자만 모아 ‘GRRM’이라고도 불리는 마틴은 <리아를 위한 노래> <샌드킹> 등의 단편소설로 휴고상, 네뷸러상 등을 수상한 작가다. 90년대 중반까지 할리우드에서 각본가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한국에서도 방영되어 익숙한 <환상특급>과 <미녀와 야수>(린다 해밀턴, 론 펄먼 주연)가 그의 TV 대표작이다.

아이러니하지만 마틴은 <얼음과 불의 노래>가 영화로 만들어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예산에 맞춰 이야기를 자르고, 캐릭터 수는 줄이고, 장면은 지워버리는 할리우드의 각색 공식을 따라 10년을 보낸 뒤 그 모든 제약에서 자유로운 이야기는 책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방대하고 긴 이야기를 떠올렸고, 많은 등장인물을 그려냈다. 후반작업이나 CG에 투입될 예산을 걱정하지 않고 판타지적 요소도 배치했다. 그런데 2000년 이후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대성공을 거두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를 향한 러브콜이 시작됐고, <HBO>에서 1부당 한 시즌을 통째로 투자하겠다고 나섰을 때야 비로소 실사화의 윤곽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알려진 대로 <얼음과 불의 노래>는 랭커스터 왕가와 요크 왕가가 왕위를 두고 벌인 ‘장미전쟁’에서 영감을 얻어 쓰여졌다. 그래서일까, <왕좌의 게임>을 볼 때 판타지라는 사실은 종종 잊게 된다. “너무 많은 판타지는 드라마를 파괴한다”는 작가의 신념이 TV시리즈에도 영향을 미쳤는지 중세 시대극을 보는 듯 어둡고 우울한 정서가 지배적이다. <얼음과 불의 노래>가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었을 때 출판사 랜덤하우스는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위한 판타지”라고 광고를 했다는데, 마틴은 TV시리즈 <왕좌의 게임>을 두고 같은 것을 기대한다. “<HBO>의 걸작 <로마> <데드우드> <소프라노스>를 좋아한 사람들이라면 보고 싶어 할 판타지”가 될 거란다. 2011년 <타임>은 조지 R. R. 마틴을 ‘100인의 영향력있는 인물’에 꼽으며 그의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를, 역시 <HBO>의 전설적인 TV시리즈 <The Wire>에 견주어 “아직도 보지(읽지) 않았다면 부끄러워해야 할 이야기”라고 적기도 했다.

원작 소설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예고된 내용이겠지만 <왕좌의 게임> 시즌1 결말에는 반전이 기다린다. 작가는 아주 무심하게도 윈터펠의 영주 에다드 스타크(숀 빈), 그러니까 시즌1의 주인공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캐릭터에게 죽음을 선사한다. 이 죽음은 원작을 읽지 않은 내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는데, 정의로운 에다드가 왕좌를 차지할 거라는 뻔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이 죽음이야말로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이어가기 위한 중요한 장치라는 생각이 든다. 에다드가 죽음으로써 왕좌의 전쟁을 둘러싼 웨스테로스의 정치적, 지리적 역학은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워졌다. 특히 기대되는 부분은 하루아침에 반역자의 자식이 되어 세상에 내던져진 스타크 가문의 자녀들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통해 캐릭터와 배우가 함께 성장하는 것을 경이롭게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왕좌의 게임>에서도 같은 재미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성인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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