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적으로 <해리 포터> 시리즈는 ‘책 읽어주는 영화’다. 조앤.K.롤링이 창조하고 67개 언어로 번역된 마법의 우주에 움직이는 삽화를 제공하고 결국 이미지라는 단일 언어로 통일하는 과제가 이 영화에 주어진 존재의 목적이다. 숙명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부터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1>까지 7편의 영화에는 소설의 감흥을 넘어서는 장면들이 간혹 있다. 여기 열개의 순간을 꼽아보니, 함께 주문을 외쳐보자. “아레스토 모멘텀!”
1. 그건 내 편지예요!
호그와트 입학통지서의 도착_<마법사의 돌> <해리 포터>의 원작자 롤링도 각색자 스티브 클로브스도 잘 알고 있었다. 흥미로운 주인공은 제일 선량한 사람이 아니라 비범한 모순을 가진 자라는 진리를. 프리벳가 4번지의 천덕꾸러기 해리 포터는 처음부터 그저 착하기만 한 희생자가 아니다. 열한살 해리는 자신의 타고난 힘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빚어질 때마다 미안해하기는커녕 티없이 맑게 웃는다. 심술쟁이 사촌이 동물원 뱀 우리 안으로 떨어지거나, 케이크를 훔쳐 먹다 돼지꼬리가 돋아날 때 순수한 흥분과 응징의 기쁨으로 빛나는 소년의 얼굴을 보라. “미스터 포터, 호그와트 마법학교 입학을 축하합니다.”답답한 머글 세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알리는 호그와트 입학통지서가 날아들자 이모부는 오는 족족 없애느라 혈안이 되지만 어느 일요일 들이닥친 편지 폭풍에는 속수무책이다. 비명을 지르는 이모네 식구들 사이에서 해리는 눈부시게 웃으며 뛰어오른다. 이 선택받은 열한살 소년에게는 그처럼 일종의 천진한 사악함이 있다. 해리의 얼굴이 함축한 마법에 대한 동경과 경이감은 1편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다.
2. 체크, 메이트!
체스판 전투_<마법사의 돌> 모든 시리즈의 1편이 그렇듯 <마법사의 돌>은 초대형 오리엔테이션이었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은 마법사 세계의 작동 원리를 관객에게 소개하는 동시에 수많은 캐릭터의 개성을 각인시키느라 바빴다. 대형 장기말이 스스로 움직이며 살벌하게 전투하는 마법사 체스 장면은, 주인공 삼총사의 성격이 뚜렷해지는 대목이며 특히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희미한 캐릭터 론이 재주와 미덕을 발휘하는 지점이다. 소심한 론은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감연히 희생을 무릅쓴다. “해리, 끝까지 가야 하는 건 나도, 헤르미온느도 아니고 너야!” 해리는 쓰러진 친구를 보고 비명을 지르지만, 론에게 달려가려는 헤르미온느를 단호히 저지한다. “멈춰, 아직 우린 게임 중이야!” 어쨌거나, 그는 영웅인 것이다.
3. 뱀으로 엉킨 악연
바실리스크와의 혈투_<비밀의 방> 해리 포터와 볼드모트는 숙적인 동시에 일종의 쌍둥이다. 로마 건국신화의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그랬듯 한쪽은 다른 한쪽을 죽여야만 한다. 볼드모트가 다가올 때 해리의 흉터는 욱신거리고 둘의 지팡이는 재료가 같다. 갓난아기 해리가 볼드모트의 살해 주문을 견디고 살아남은 운명의 밤, 볼드모트의 능력 일부가 해리에게 전이됐는데 뱀의 언어를 말하고 듣는 재능이 그중 중요한 한 가지다. 결과적으로 뱀은 <해리 포터> 시리즈 곳곳에 출몰하는 열쇠 이미지가 됐다. <비밀의 방>의 클라이맥스는 파충류의 왕이라고 일컬을 만한 괴물 바실리스크와 해리의 피투성이 전투다. 가로 75m, 세로 36m 넓이의 세트에서 촬영된 이 장면은 <에일리언>,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참조한 흔적을 감추지 않는다.
4. 곤경에 처한 마법사여, 삼층버스를 타라
야간 구조버스의 질주_<아즈카반의 죄수> 호그와트 학생들의 삐딱하게 맨 교복 넥타이만 봐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스타일이 한눈에 보인다. 사춘기에 접어든 해리가 이불 속에서 지팡이로 불을 켜는 은근한 뉘앙스의 첫 장면부터 <아즈카반의 죄수>의 연출은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불량스럽고’ 섹시하다. 미성년자는 학교 밖에서 마법을 쓰면 안된다는 규칙을 어긴 해리를 런던까지 실어다주는 야간 구조버스의 질주 시퀀스는, 원작을 넘어서는 상상력으로 출렁거린다. 막말을 내뱉으며 차창 앞에 달랑거리는 레게 머리 인형과 어이없는 난폭 운전, 신나는 음악이 어울려 한바탕 마리아치 공연과도 같은 흥이 솟는 장면. 알폰소 쿠아론, 과연 그는 카니발이 뭔지 안다.
5. 창공과 소년
해리와 히포크리프의 비행_<아즈카반의 죄수> 1, 2편도 격렬한 퀴디치 게임을 포함해 여러 차례 공중 장면을 연출했지만, 히포크리프를 얼떨결에 올라탄 해리가 호그와트 주변의 산과 호수 위를 홀로 활공하는 3편의 이 장면만큼 비행의 감각을 탁월하게 포착하지는 못했다. 처음 질겁했던 소년은 점점 해방감에 몸을 맡기고 마침내 희열로 크게 소리친다. 호수 위를 낮게 나는 동안 소년은 수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응시하고, 히포크리프는 발톱으로 수면을 어루만진다. 알폰소 쿠아론은 하늘을 나는 행위의 역동성뿐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정적까지 묘사한다. 이 장면뿐만 아니라 <아즈카반의 죄수>는 호그와트를 둘러싼 자연과 계절의 호흡을 적재적소에 효과적으로 끌어들여, 마법학교의 기기묘묘한 인테리어를 보여주는 데에 주력해야 했던 전편과 차별화에 성공했다.
6. 내 수호천사는 누구인가
패트로누스 마법 vs. 죽음을 먹는 자_<아즈카반의 죄수> 모든 긍정적 생각과 행복한 감정을 빨아내는 존재 디멘터가 해리 포터에게 유독 공포스런 적수인 까닭은 슬프도록 단순하다. 이 소년이 가진 ‘최악의 기억’은 친구들의 그것에 비할 바가 못 되게 끔찍하기 때문이다. 디멘터와 대적할 수 있는 방책은, 최고의 마법사만 구사할 수 있다는 패트로누스 마법. 행복한 기억을 통해 수호신을 불러내는 주문이다. 대부 시리우스 블랙을 살리기 위해 디멘터와 맞선 해리는 아빠가 패트로누스 마법으로 자신을 도와줬다고 믿지만 시간여행을 통해 돌아간 그 자리에는 뜻밖의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각 에피소드의 마무리가 밋밋하기로 정평이 있는데, <아즈카반의 죄수>만큼은 예외다. 디멘터는 <해리 포터>의 캐릭터 디자인 중 가장 인상적인 경우다.
7. 유년의 끝, 사랑의 시작
목욕탕의 소녀 유령_<불의 잔> 퀴디치 올림픽과 국제 마법사 친선 트라이위저드 경기가 성대하게 펼쳐지는 <불의 잔>은 <해리 포터> 연작에서 스펙터클의 정점이다. 그러나 요란한 이벤트 이면에서 벌어지는 진짜 사건은 열네살이 된 주인공들에게 도래한 사춘기다. 남녀의 감성 차이는 친구 사이에 틈을 만들고, 조숙한 소녀는 여전히 철없는 소년에게 상처받아 눈물 흘린다(론 왈, “참 헤르미온느, 너도 여자였지?”). 론과 헤르미온느의 갈등이 폭발하는 크리스마스 무도회 장면은 존 휴스의 하이틴영화를 추억하게 만든다. 해리에게 호감을 품은 소녀 유령 모우닝 머틀이 목욕탕으로 찾아와 트라이위저드 게임의 힌트를 주는 장면은 서사적 정보와 무관하게 인상적이다. 굵어진 몸집의 해리는 쑥스러워 어쩔 줄 모른다. 관객도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실. 해리는 더이상, 아이가 아니다.
8. 아버지 어렸을 적에
스네이프 교수의 과거_<불사조 기사단> 10년에 걸친 <해리 포터> 시리즈의 대장정 동안 단 한번도 웃지 않은 사나이. 마법의 약 과목 담당이자 슬리데린 기숙사 담임교수인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없었다면 <해리 포터>의 인간관은 훨씬 평면적이었을 것이다. 스네이프는 덤블도어 교장의 대의를 따르면서도 해리에 대한 미움을 차마 감추지 못하는데, 이는 해리의 아버지 제임스에게 학창 시절 받은 수모 때문이다. 5편에서 볼드모트가 마음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스네이프에게 개인교습을 받던 해리는 우연히 교수의 기억을 엿보고 충격을 받는다. 아무도 완벽하지 않다. 비록, 아버지라 해도. 소년은 그렇게 청년이 되어간다.
9.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프레드와 조지의 역습_<불사조 기사단> 볼드모트의 귀환에 대응하는 전략을 놓고 덤블도어와 대립하는 마법부는 학원에 간섭하기 시작하고 그 첨병으로 돌로레스 엄브리지 장학관을 파견한다. 교권침탈, 몰상식한 체벌, 남녀 8인치 이내 부동석, 학원 내 집회결사 금지(심지어 초상화 속 군상까지 흩어놓는다) 등 우리에게 왠지 친숙한 포고령을 남발하는 엄브리지. 옷도 가구도 분홍만 고집하는 그녀는 핑크가 얼마나 소름끼치는 색인지 가르쳐준다. 전횡을 견디다 못한 위즐리 가문의 장난꾸러기 쌍둥이는 학교를 때려치우고 마법사 레벨 시험날 반란을 감행한다. 우수수 떨어지는 포고문이 호그와트 생도와 관객에게 공히 선사한 시각적 카타르시스!
10.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해리와 헤르미온느, 절망 속에서 춤추다_<죽음의 성물1> 덤블도어의 죽음 이후 인종주의 파시즘 광풍이 지배하게 된 황폐한 세계에서 삼총사는 승산이 희박한 고독한 전쟁에 나선다. 히스테리를 일으킨 론이 잠시 떠난 동안,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점점 말수가 줄어간다. 슬픔과 피로에 지친 어느 밤,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소년은 천막 반대편에 구겨져 있던 소녀에게 다가가 말없이 춤을 청한다. 의아해하던 소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서서히 번지고 어린 시절 같은 환한 웃음 속에 잠시 어우러졌던 둘은 이내 다시 쓸쓸해져 떨어진다. 둘의 춤은 통상 리드하고 따르는 남녀의 댄스와는 전혀 다른 위무의 몸짓이다. 초췌한 수염이 돋은 해리와 엄마 같은 표정을 짓게 된 헤르미온느는 이제 서로 무언의 위로를 나누게 됐다. 서사적으로 전혀 쓸모가 없는 이 이상한 장면은 <죽음의 성물1>을 쉽게 잊을 수 없도록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