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 시리즈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우리에게 선물했고, 또 수많은 배우들을 새롭게 소개하거나 다시 발굴해냈다. 시리즈의 마지막을 기념하며 몇몇 중요한 캐릭터와 배우들의 이야기를 곱씹어보자.
해리 포터 / 대니얼 래드클리프 우리는 종종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해리 포터 역할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빨리 성장했다고 불평한다. 온당한가? 스티븐 스필버그가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감독직을 탐냈을 때를 기억해보자. 그는 할리 조엘 오스먼트를 해리 역할에 앉히겠다고 주장하다가 J. K. 롤링의 극렬한 반대로 꿈을 접었다. 오스먼트가 해리가 됐더라면? 그 천재적인 아역배우의 최근 사진을 구글에서 찾아본다면 스필버그의 사라진 꿈을 지지하지는 못할 터이다. 지금 대니얼 래드클리프의 얼굴은 해리 포터 자체다. 그는 해리와 함께 성장했고, 어쩌면 영원히 해리를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래드클리프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제 삶의 11년을 차지했어요. 마침내 끝이 난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 이상해요. 해리는 나에겐 어떤 안전망이었거든요. 만약 시리즈 바깥에서 뭔가를 잘 못하더라도 언제나 해리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갑자기 그런 안전망이 사라지는 거예요. 직업적인 레벨에서, 조금 무서워요.” 우리 역시 조금은 무섭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아이콘의 얼굴을 하고서 다른 역할을 해내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장성한 그가 여배우와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 ‘해리 포터가 저런 키스를 하다니!’라고 내심 비명을 지르며 몰래 이마의 번개 상처를 찾아내려 노력하지 않는 게 가능할까? 글쎄,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런 걱정은 잠시 접어두자. 지금은 영원히 해리 포터로 남겠지만 어쩌면 더 흥미진진해질 청년에게 격식을 갖춰 작별인사를 건네는 게 더 중요한 일이다. 아듀. 해리 포터.
론 위즐리 / 루퍼트 그린트 세 주인공 중에서 지난 11년의 세월이 가장 크게 흔들어놓은 캐릭터는 론 위즐리일 것이다. 영국에서도 ‘진저’(Ginger: 생강)라 불리는 드문 빨간 머리에 주근깨가 알알이 박힌 론 위즐리는 종종 어두운 해리와 종종 답답한 헤르미온느의 곁에서 우리의 숨을 풀어주는 존재였다. 그러나 지난 몇편의 시리즈에서 론 위즐리는 분노와 질투와 성적인 욕망으로 살짝 발을 헛디디기도 하는 남자가 됐다. 루퍼트 그린트는 자신이 캐릭터의 성격을 가장 많이 닮은 배우라고 말한다. “항상 론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살았어요. 같은 빨간 머리여서 그런가. 실재로도 론의 캐릭터를 많이 흡수하며 자랐을지 모르죠.” 캐릭터와 가장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루퍼트 그린트는 가장 자유롭게 <해리 포터> 이후의 시대를 밟아나갈지도 모른다. 그는 론 위즐리처럼 여유가 넘치는 남자니까 말이다. “이건 진짜 기나긴 게임 같은 거예요. <해리 포터> 시리즈는 언제나 저를 따라다닐 거예요. 무서울 정도로 거대한 시리즈였고, 앞으로 제가 하게 될 어떤 영화보다도 거대할 거예요. 그냥 그 사실을 받아들인 채로 나아갈 거예요. 진짜예요.”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 에마 왓슨 J. K. 롤링의 가장 현명한 점 중 하나는 수백만 독자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해리와 헤르미온느 사이의 로맨틱한 감정을 일찌감치 잠재웠다는 것이다. 해리가 4편 정도에서 헤르미온느와 사랑에 빠졌고, 그 관계가 진득하게 마지막까지 연결됐다고 상상해보시라. 이야기의 절반은 둘의 로맨스와 론의 광기어린 질투에 온전히 할애해야만 했을지도 모른다(사춘기 질투 앞에서 볼드모트 따위가 무슨 맥을 추겠는가). 에마 왓슨은 헤르미온느가 11년의 세월을 거치며 “더 현명해지고 유들유들해졌다”고 설명한다. 그러고는 덧붙인다. “물론 여전히 책벌레에 융통성없는 여자이긴 하지만 말이에요. (웃음)” 배우로서 에마 왓슨은 여전히 시리즈에 묶여 있는 대신 버버리 광고의 주역으로서 파파라치들이 맹렬하게 뒤쫓는 ‘스타’가 됐다. 세 배우 중 가장 먼저 일반적인 스타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제작진은 그녀가 시리즈를 하차할까 조마조마했다고들 고백한다. 물론 왓슨은 그럴 생각이 애초에 없었던 것 같고. “알겠지만, 제가 찾던 그런 역할은 아니었죠. 역할이 저를 찾아왔던 거고, 그래서 의문이 생길 때도 있었어요. 내가 이 역을 계속하는 게 옳을까? 그러나 저는 다 해냈고, 정말 근사한 기분이 들어요.”
알버스 덤블도어 / 마이클 갬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보면서도 덤블도어를 연기하는 배우가 바뀌었다는 걸 금방 깨닫지는 못했다(독자들 중에서도 분명 그런 사람들 있으리라). 사실 2편까지 연기하고 작고한 리처드 해리스와 새롭게 뛰어든 마이클 갬본이 아주 닮은 편은 아니다. 그저 누구라도 하얀 수염을 달고 치렁치렁한 가운을 걸치면 비슷해 보이게 마련이리라. 그러나 시리즈가 뒤로 갈수록 두 덤블도어는 확연히 달랐다. 해리스의 덤블도어가 전설 속 현자라면 갬본의 덤블도어는 약간 엉큼하고 미친 노친네 같은 데가 있었다. 시리즈의 강성팬들이 ‘카페인 과다 복용 덤블도어’라며 몸서리를 쳤던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하지만 수많은 비밀을 속에 품고 있는 이 완고한 늙은이를 갬본이 훌륭하게 이어받아 끝내주게 마무리한 건 어떤 강성팬도 비난할 수 없을 거다.
루베우스 해그리드 / 로비 콜트레인 해그리드가 없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해리 포터 일당이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 리 만무하다. 해그리드는 해리 포터 일당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대리 부모이자(이렇게 말해도 될는지 모르겠다만) 충실한 보디가드였다. 시리즈 이전에는 007 시리즈 발렌타인 주코프스키 역으로 유명했던 로비 콜트레인은 이제 해그리드와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그는 J. K. 롤링이 직접 선정한 몇 안되는 배우 중 한명이었다. “롤링이 설명하더군요. 해그리드는 육중한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펍으로 향한 뒤,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헤치고 자리에 앉아서는 정원 꾸미기에 대해서 말할 남자라고요. 그게 참 좋더라고요.”
세베루스 스네이프 / 앨런 릭맨 좋아하지만 입 밖으로 내어 말할 수 없는 캐릭터가 누구십니까? 그렇다. 세베루스 스네이프에 대해서 말해보자는 거다. 그는 악당인가? 그렇다. 그는 선인인가? 그렇다. 그는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동전의 양면을 모두 내보이는 캐릭터다. 심지어 그는 해리의 아버지에게 왕따를 당한 상처를 아직도 씻지 못하는 속좁은 범인 아니던가. 마치 우리처럼. 그런데 스네이프의 이 절묘한 양면성은 배우 앨런 릭맨의 덕을 입은 바가 크다. 언제나 도덕적 모호함을 캐릭터에 마술처럼 덧입히는 릭맨 특유의 아우라가 아니었다면 스네이프는 그저 스네이‘크’ 같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해리 포터> 시리즈가 제 경력을 제한하겠냐고요?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 시리즈를 하기 전에도 훨씬 흥미진진한 역할이 많이 들어왔었습니다. 물론 이 시리즈가 제 삶의 일부이기는 합니다만 어떤 방식으로도 제 삶을 제한하지는 않았습니다. 최소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스네이프, 아니, 앨런 릭맨답다.
도비 / 토비 존스 <해리 포터> 시리즈의 가장 막강한 울음 폭탄을 남긴 건 시리즈의 시작부터 해리의 충실한 조력자로 활동했던 도비의 죽음이었다. 동시에 도비는 지난 11년의 테크놀로지 발전 과정을 온몸으로 증언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도비를 연기한 토비 존스는 말한다. “2편 때까지만 해도 녹음실에서만 앉아서 작업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테크놀로지가 점점 발전하더니,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1>에서는 촬영을 한 뒤 캐릭터를 만들고, 다시 녹음을 하고, 그런 다음 또 움직임을 만들고….”
볼드모트 / 레이프 파인즈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이 제작에 들어가기 전 최고의 관심사는 볼드모트를 연기할 배우였다. 많은 (악역 전문) 배우들이 물망에 올랐다. 진짜 배우가 정해지자 모두가 무릎을 쳤다. 레이프 파인즈라면 진정한 볼더모트의 자격이 있는 배우였으니까 말이다. 레이프 파인즈는 ‘동정’의 마음으로 볼더모트를 연기했다고 회고한다. “제가 연기해온 많은 악당들도 그랬지만, 악당이 파멸할 때 우리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동정을 갖게 됩니다. 볼드모트에게도 어떤 나약함이 존재하지요.” 레이프 파인즈의 볼드모트가 파멸할 때 우리는 롤링 스톤스의 <Sympathy for the Devil>을 합창해도 좋을 것이다.
시리우스 블랙 / 게리 올드먼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서 죽고 난 뒤 신작들을 홍보하던 때였죠. 한 꼬마가 다가와 묻더군요. ‘대체 아치문의 베일 뒤편에서 시리우스 블랙이 뭘 봤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죠. <다크 나이트>와 <크리스마스 캐럴>을 봤단다 얘야.”
맥고나걸 / 매기 스미스 “이젠 애들이 절 길거리에서 알아보곤 깜짝 놀라곤 하죠. 물론 맥고나걸 모자를 쓰고 돌아다니면 더 잘 알아들 보겠지만 말이에요. 가끔은 레스토랑에 갔다가 아이들이 절 쳐다보며 ‘흐으으음. 저게 누구더라?’라는 표정을 짓죠. 마침내 깨달은 애들은 완전히 난리가 나고 말이에요. 그런 다음? 온갖 물건들에 사인을 해준 다음 이렇게 말해야 한답니다. 아니. 미안하지만 난 고양이로 변신할 순 없단다.”
네빌 롱바텀 / 매튜 루이스 “이 역할을 지난 11년간 해왔으니 이젠 다른 걸 할 준비도 되어 있어요. 네빌에게 작별을 고하고 내가 또 뭘 할 수 있을지를 알아봐야죠. J. K. 롤링이 속편을 또 쓴다면야 물론 다시 할 겁니다. 그래도 지금은 시리즈가 끝나서 행복해요.”
드라코 말포이 / 톰 펠튼 “저는 사람들이 이 마지막 편에서 정말로 말포이를 동정했으면 좋겠어요. 대니얼과 전 우리 캐릭터들이 코인의 양면이라고 이야기를 하곤 해요. 해리는 좋은 본만 받고 자랐지만, 말포이는 자신의 친부모가 바로 최악의 본이라는 사실과 끊임없이 싸워야만 하는 아이니까요,”
리무스 루핀 / 데이비드 튤리스 “걱정없어요. 만약 지금 이후 배우로서의 경력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언제든 해리 포터 테마파크에서 코스튬을 입고 퍼레이드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 테니까요. (웃음)”
피터 패티그루 / 티모시 스폴 “패티그루는 전형적인 왕따죠. 징징거리고 못된 쪼그만 놈이죠. 잊지 못할 역할이 될 겁니다. 이제부터 전 사람들에게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온 그 시궁쥐 친구로 언제나 기억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