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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궁극의 전쟁기계

냉전시대 군사적 상상력이 빚어낸 변종기계, 엑스젯 혹은 SR-71 블랙버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한 장면. 미스티와 행크 머리 위에 떠 있는 엑스젯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찰스 자비에는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고 움직일 수 있는 초능력의 소유자다. 그는 천재 과학자 행크와 조우하면서 자신의 초능력을 ‘증폭’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의 텔레파시는 레이더 특수 장치, ‘세레브로’의 도움으로, 북미 대륙 전역을 종횡으로 이동하면서 거대한 희로애락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이에 맞서는 세바스찬 쇼우의 방어무기는 소련인들이 선물했다는 특수 합금 투구다. 자비에는 이 투구의 은폐 기능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흥미롭게도 이 투구의 기능은 영화 막바지에 등장해 엑스젯(엑스맨 활동에 필수적인 제트기)을 연기한 전략정찰기, SR-71 블랙버드의 그것과 유사하다. 이 항공기는 자신의 뒤꽁무니를 쫓는 미사일을 마하 3의 속도로 따돌릴 수 있지만 내연기관의 추진력을 극대화한 유선형의 외관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의 것을 욕망한다. 바로 대공 레이더라는 기계 눈 앞에서 투명한 물체로 변신하는 것, 이를 위해 레이더파의 반사를 최소화하는 새로운 조형의 원리를 습득하는 것이다. 이렇게 속도의 미학과 비가시화의 전략을 동시에 추구하다 보니 이 전쟁기계의 몸체는 다소 기형적이었다. 납작한 곡면의 티타늄 동체는 기하학적 형태의 델타익을 장착하고 있었고, 코브라 형상의 기수부는 원뿔 모양의 엔진 공기 흡입구를 좌우 양편에 거느리고 있었다. 유클리드적 형태와 베지어 곡선이 묘한 균형을 이루며 동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 영화에서 SR-71의 등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세레브로로 증폭된 자비에의 초능력은,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60년대 초반, 미국과 소련이 동시에 꿈꿨던 궁극의 전쟁기계를 암시한다. 당시 두 나라 모두 인공위성, 고성능 카메라, 인공지능 컴퓨터를 결합해 상대방의 동태를 속속들이 염탐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기계 눈의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동화 속의 수정구슬 같은 장치를 보유한다면 상대방의 선제 핵도발에 대처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자비에는 이런 냉전의 군사적 상상력을 현실화한 존재다. 강도의 차이가 있지만 다른 돌연변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기술 혁신이 아니라 유전자 변이를 통해 전쟁기계로 진화한다.

이런 측면에서 SR-71을 캐스팅한 것은 ‘신의 한수’라고 할 만하다. 특히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에서 노구의 제트파이어가 이 비행기로 변신하는 장면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했던 관객이라면 더욱 그렇게 느낄 것이다. SR-71은 10대 남자아이의 눈높이에서 그저 ‘쿨한’ 시각적 오브제로 소비되었던 과거를 뒤로한 채 핵잠수함과 기이한 공중곡예를 펼쳐 보인다. 역사와 허구가 교차하는 쿠바 미사일 사태 한복판에서 냉전의 뜨거운 기운을 스크린 위로 불러들이면서, 엑스맨과 유사한 탄생 비화를 지녔던 변종기계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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