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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진] 김여진+대한민국=(배우+자유인)×사회참여형

<내 마음이 들리니?> 김여진

김여진과 독고진. ‘진’자 돌림의 두 배우는 흥미로운 비교대상이다. 배우는 연기활동 외에 무엇을 하고 사나. 영화 <파이터>를 찍은 독고진은 구애정을 만나고,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를 촬영 중인 김여진은 한진중공업의 김진숙을 만난다. 문제는 배우의 사생활이 공개될 때다. 국민호감 독고진은 비호감 연예인인 구애정을 사랑한다고 고백해 악플에 시달렸다. 김여진은 ‘배우가 연기나 할 것이지’란 비난을 감수하고 있다. 24시간을 배우로만, 혹은 스타로만 살기를 요구받는 배우의 인생, 그리고 그런 요구가 깨졌을 때 어떤 논란이 벌어지는가란 관점에서 볼 때, 김여진과 독고진의 최근 행적은 눈에 띄는 사례이다. 당연히 김여진은 “배우가 배우랍시고 항상 각잡고 사는 게 가능하겠냐”고 반문했다.

-어제(6월27일)도 한진중공업 파업현장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즘에는 연기를 할 때가 더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싶더라. =현장에서 괴로웠던 적은 없다. 그런데 최근 며칠은 정말 연기를 할 때가 행복했다. 일단은 다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 사실 어제 일 때문에 오늘도 마음이 편치 않다.

-연기가 행복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캐릭터 때문일 것 같다. <내 마음이 들리니?>의 나미숙은 사랑도 받고, 하고 싶은 말도 속 시원히 하는 여자다. 1인2역을 했는데, 특히 초반에 연기한 봉우리의 엄마 미숙은 배우 김여진이 이렇게 사랑받는 여자를 연기한 적이 있었던가 싶더라.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나 성격있는 조연쪽이어서 그랬을 거다. 단막극 정도에서나 알콩달콩한 사랑을 해봤다. <그들이 사는 세상>의 이서우나 <대장금>의 장덕이나 아예 멜로라인이 없었다. 만약 심각한 캐릭터였다면 지금 내가 너무 힘들었을 거다. 일상에서 별다른 일이 없어도 슬픈 캐릭터는 힘들게 마련이다. 연기가 지금 나에게는 쉬는 시간이고 노는 시간이다. 캐릭터 이야기를 하니까 좀 밝아지는 것 같지 않나? (웃음)

-1인2역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건가. =자세한 캐릭터까지는 못 들었다. 판매왕이고 봉영규(정보석)와 붙는다는 정도였다. 촬영 이틀 전인가 대본을 받았는데, 완전 뒤집어지면서 웃었다. 이렇게 코믹한 캐릭터도 처음이다. 가족들도 너무 웃고 있다. 트위터에서도 “푸하하하”, “데굴데굴”, 이런 식의 멘션만 올라온 적이 있었다. 대본을 읽으면서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가 한번에 그려지더라. 호피무늬, 빨간 립스틱 같은 거. 평소에도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을 연기할 때는 별로 고민이 없다. 어떤 면에서는 <중경삼림>의 임청하를 떠올리기는 했었다. 임청하는 진지하지만 이 여자는 혼자 진지한 게 차이겠지.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그렇게 한번에 그려졌던 캐릭터는 또 누가 있었나. =<그들이 사는 세상>의 이서우도 처음부터 폭탄머리 같은 게 떠올랐었다. 그리고 노희경 작가처럼 작고 말라서 책상에 구겨지는 몸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정말 혹독하게 다이어트를 했었다. 지금보다 7kg이 덜 나갔던 때였다. 그런데 모니터를 해보니 난 살을 빼도 소용이 없더라. 생긴 게 워낙 동글동글해서 별 차이가 없더라고. (웃음)

-1인2역은 원래 정해졌지만 4부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 외압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닐 것 같아도 워낙 그런 시대라 설득력이 있는 소문처럼 들렸다. =걱정을 많이 해주시는데, 나는 좀 황당했다. 제발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실질적인 외압보다 한두건의 사건으로 사람들이 겁먹는 게 더 무서운 일이다. 우리가 서로를 말리게 되지 않겠나. “너 그러면 안돼, 그러면 큰일나” 이러면서 할 말을 못하게 만든다면 그쪽에서 볼 때 그것만큼 큰 성과가 없을 거다. 그런 일이 있거나 소문이 돌아도 웃어넘겨야 한다. 만약 정말 내가 다시는 드라마를 못하게 되더라도 난 내 활동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다. 다른 거 하면 되지. 영화하고 연극하면 되고. 오히려 잘될 수도 있다. 난 김제동씨가 더 잘된 것 같다. 하고 싶은 일도 실컷 하지만 아무도 못 가지는 아우라가 생겼지 않나.

-올해 1월부터 지금까지 김여진의 행적을 따라가면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뉴스를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이다. =처음 홍대를 갔을 때만 해도 이렇게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때는 내가 별로 유명하지 않은 연기자라는 게 서러웠다. 인기가 많은 배우였다면 내가 찾아간 게 큰 힘이 될 텐데, 그렇지 않은 게 안타깝더라. 그런데 그날 같이 갔던 미디어 몽구가 내가 청소노동자분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난리가 났다. 지금까지도 놀라운 부분인데, 일단 사람들이 반응을 보여준다는 게 기쁘더라. 사실 트위터라는 게 나한테는 개인적인 놀이터였다. 지금도 그때보다 팔로워 수가 늘어난 걸 가지고 인기가 많아졌다고 보지 않는다. 함께 의견을 보태고 행동하는 사람이 늘어난 거다.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면 지금도 실감이 안 난다. 누가 요술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과 함께 무리한 요청도 몰릴 것 같다. =정말 엄청나다. 내가 신문고가 된 것 같다. 한번은 대학생 10명이 2박3일 여행가는데, 거기 와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웃음) 홍대 청소노동자분들과 함께할 때는 전국의 각 지역 대학 청소노동자분들이 참여를 요청하셨다. 부담이 안되는 건 아닌데, 부담보다는 즐거움이 크다. 일단 단순하게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 시간이 허락되는 만큼 하려고 했다. 청소노동자분들을 다 찾아갈 수는 없지만 홍대 한곳에서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른 곳에서도 비슷하게 활동을 할 거라 생각했다.

-사회활동과 관련된 뉴스를 보면서 들었던 의문 가운데 하나는 매니지먼트사에서 가만히 있을까였다. =1월1일에 홍대에 갈 수 있었던 게 전년도 12월에 계약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웃음) 그렇다고 사회활동을 위해서 계약을 연장하지 않은 건 아니다. 사실 원래도 자유로운 편이었다. 사람이 자유를 뺏기는 가장 큰 이유가 돈 때문이다. 원래 매니저하고는 계약금 없이 거의 구두계약으로 같이 일을 했다. 마음이 틀어지면 언제든 갈라선다는 거였는데, 그래도 간섭과 제약은 있더라. 만약 계약금을 받은 상황에서 내가 홍대를 찾아갔다면 그건 소송에 걸릴 일이었을 거다. 광고라도 한편 했다면 정말 더 큰 난리가 났을 거다. 하지만 다행히도 난 받은 게 없어서…. (웃음) 지금 연기를 시작한 뒤 처음 자유를 누려보고 있다. 프리로 나와보니 별게 아니더라. 진작 이럴 걸 싶었다.

-홍대 이전에도 기아 질병 문맹퇴치 시민단체인 JTS(Join Together Society) 등 여러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하지만 홍대를 찾아간 이유가 단지 그런 활동의 연장선상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 김여진이라는 배우에게 홍대를 갈 수밖에 없었던 절실한 이유가 있지 않았나. =내가 생각해도 복합적인 것 같다. 특별한 계기를 말하기 힘들다. 물론 이전에 단체에서 상근활동을 하던 게 몸에 배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일하는 게 겁나지 않은 것도 있다. 항상 의미와 재미가 함께 있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밸런스에 맞는 일을 찾다보니 한 거다. 또 하나는 연기자로서의 이유도 있을 거다. 그때 당시 연극 <엄마를 부탁해>와 영화 <아이들…>을 했다. 하나는 엄마를 잃은 딸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를 잃은 엄마인데, 상당히 극단적인 아픔을 연기해야 했던 시기였다. 매일 울었다. 차에서 울고 연습하면서 울고, 공연하면서 울고. 그 정도면 감정과잉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여배우는 늘 슬픈 감정을 요구받지 않나. 이런 상태를 좋은 방향으로 돌리지 않으면 바로 우울증으로 가거나 중독에 빠질 거다. 쇼핑, 술, 도박. 어쨌든 비싼 취미들. 배우란 직업이 정말 그러기 쉽다. 홍대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어떤 정의나 당위가 있었던 건 아니다. 뭐가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마음이 움직여야 행동을 하지 않나. 나한테 그때는 사진 하나, 글 한줄에 눈물이 나고 그곳에 가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던 때였다.

-외압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사회활동이 강하게 드러날수록 배우와 관객의 관계에 장벽이 생기는 게 있다. 작품 속의 배우에게 관객이 감정이입하는 과정에서 볼 때, 지금의 활동은 연애 스캔들보다 더 큰 장벽을 만들지 않을까. =분명히 그런 게 있다. <100분토론>에도 나오고, 한진중공업에도 찾아가는 내가 나미숙으로 나올 때,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이 분명 있을 거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꼭 사회활동이 아니더라도 많은 배우들이 평소의 이미지와 작품 속 캐릭터의 격차를 조율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정치적 발언이나 사회활동은 일단 금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부각되는 면이 있다. 특히 여배우는 그런 경우가 별로 없다. 나는 일단 내 연기력을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 그 장벽을 넘길지, 못 넘길지 나도 지금 실험을 해보는 거나 마찬가지다. 못 넘어간다면? 감수해야지. 그건 흔쾌히 감수해야 하는 거다.

-실험이자 모험 같다. =재밌는 거다. 어떤 상식이나 법칙들을 좀 뛰어넘는 건 재밌지 않나. 나 같은 사람이 처음 나오면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심지어 연예인의 사회참여에 대한 TV토론회도 하는데, 그래서 재밌는 거다. 나는 내 삶을 지구에 놀러온 외계인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난 놀려고 태어난 것 같다. 무엇을 하든지 잘되든 안되든 일단 해보자는 주의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활동영역이 다양해진 건 맞다.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도 고정 게스트로 나온다던데.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과 달리 일은 계속 들어온다. (웃음) 연극도 하기로 했고, 영화 시나리오도 한편 받았다. <손석희의 시선집중>뿐만 아니라 출판 의뢰도 들어온다. 한번도 써본 적이 없는데, 그런 생각은 있다. 꼭 내 자신을 배우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보통 배우는 연기에만 올인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게 정답은 아닐 거다.

-그렇다면 김여진이 생각하는 배우의 인생은 어떤 건가. =연기는 기다림이 대부분이다. 촬영장에서도 서너 시간을 기다리다가 고작 몇분을 찍는다. 주연배우도 바쁠 것 같지만 작품이 끝나면 주야장천 쉬지 않나. 전체 인생을 봤을 때 배우가 배우로 사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면 그 나머지 시간에 무엇을 할 거냐는 거다. 배우라면 누구나 그 시간에 무언가를 해야만 살 수 있다. 여행을 다니거나, 공부를 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골프를 치거나, 쇼핑을 하거나. 나는 그게 사회활동이다. 출퇴근을 하는 직업이었다면 연기도 일상이 됐겠지만 연기자란 직업은 일상이 될 수 없으니까.

-배우가 아닌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잘 이해하기 힘들다. “배우가 연기나 할 것이지…”란 말도 그 때문에 나왔을 거다. =맞다. 그런데 내가 연기 안 하는 거 아니지 않나. 난 정말 열심히 연기하고 있는데 말이다. (웃음) 나머지 시간에도 연기를 하려면 한꺼번에 서너 작품을 동시에 해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배우는 평소에 완전한 자연인이어야 한다. 실제의 자신과 캐릭터의 편차가 커야만 몰입할 수 있는 영역도 커지게 마련이다. 지금 나에게 <내 마음이 들리니?>의 나미숙은 정말 엄청난 격차를 가진 캐릭터다. 그래서 더 재밌고 행복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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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메이크업 : 함경식(제니하우스) 의상협찬 : 시크플레이스, 핑크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