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씨를 처음 만난 건 1997년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영화 무가지 <네가>를 막 창간한 상황이었고, 나는 일간지 문화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잡지를 홍보하기 위해 일간지 선배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던 터. 선배 옆자리에 앉아 있다는 이유로 엉거주춤 인사를 나누며 통성명한 게 그를 알게 된 계기라면 계기였다. 그는 이후 2000년 창간된 영화주간지 <필름2.0>에 기자로 입사했고 나 또한 2000년 10월 <씨네21>에 합류하면서 인연은 이어졌다. 시사회나 현장, 영화인과의 술자리 같은 데서 만날 때마다 그는 총총한 눈빛을 보내며 “어때요, 재밌어요?”라며 안부를 묻곤 했다.
얄궂게도,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건 다른 상가(喪家)에서였다. 42살의 젊음이, 다양한 재능을 가졌던 이가 스러졌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마음이 이상하게 먹먹했던 건 어쩌면 그가 비슷한 연배의 ‘동업자’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간략하게나마 그의 삶을 돌이켜보려는 건 유능했던 한 영화 저널리스트에 대한 추모의 마음과 지나치게 짧았던 어떤 삶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일 것이다.
1969년 태어난 이지훈씨는 대학생 시절이던 1993년, 시네마테크에서 함께 영화를 보던 이들과 동아리 ‘광란’을 만들어 이끌었다. 영화에 대한 애정과 지식은 이때 깊어졌다. 대학 졸업 무렵에는 영화월간지 <스크린>에 입사해 기자로 활약했다. 아내인 신유경 영화인 대표를 만난 것도 이즈음이다. 1997년 그는 동아리 구성원들과 함께 <네가>를 창간했고, 2000년에는 <필름2.0>에 입사했다. 2004년 11월에는 편집장이 됐다. 그는 90년대 후반부터 영화정보 프로그램 <출발! 비디오 여행>의 작가로도 꾸준히 활동해왔다.
병마가 다가온 건 2007년 1월19일이었다. <아버지의 깃발> 시사를 보던 도중 그는 갑작스런 구토를 느껴 극장을 뛰쳐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의식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간 그에게 의사는 뇌종양이라는 선고를 내렸다. 긴 수술 끝에 종양은 제거됐고 건강도 놀랍게 회복돼 시간이 흐른 뒤에는 <접속! 무비월드> 작가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지난해 종양이 재발했고 올해 초부터는 병세가 깊어져 끝내 6월30일 새벽, 그는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를 알아왔던 이들은 “평소에는 스스럼없고 온화하지만 일에서는 결벽증 환자처럼 철저한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게다가 그가 쓰러지던 무렵에는 <필름2.0>의 상황이 무척 안 좋았던 탓에 편집장으로서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가 엄청났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스트레스를 홀로 짊어졌다고 한다. 당시 그와 함께 일했던 주성철 기자는 “우리 후배들에게 오는 스트레스까지 모두 감당했던 것 같은데 그게 종양의 원인 아니었을까”라고 말한다.
그러니 이지훈씨, 저세계에서는 부디 스트레스를 훌훌 풀고 자유롭게 지내세요.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됐을 땐 제가 물어볼게요. “어때요,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