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역의 풍토는 인간의 체내에서 피처럼 흘러 세포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면서 기억을 이어나간다. 가우디의 작업물을 보면 풍토야말로 창조성이 잠재해 있는 곳임을 새삼 깨닫는다. 근대 건축이 폐기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풍토다. 1960년대부터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진 근대 건축은 공간으로부터 자연을 차단하고 테크놀로지에 의해 관리되는 공간을 조성했다. 그 안에서 건축 또한 소비사회의 상품에 불과하다. 그러나 건축이란 본디 인간이 생활하기 위한 출발점이어야 한다.”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은 그가 60년대 중반부터 90년대까지 여행을 통해 만난 도시건축을 다룬 에세이집이다. 일본 정부는 1964년 처음으로 일반 여행자의 해외여행을 허용했다는데, 그는 1965년에 처음으로 배와 기차를 갈아타며 모스크바를 거쳐 파리로 입성했다고 한다. 르코르뷔지에와의 만남을 기대했던 젊었던 자신을 추억하는 글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평생 건축이라는 문제를 생각하며 산다는 일은 어떤 의미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건축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대해 전문적인 소견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나로서는 그저 한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을 만났다는 즐거움을 느낄 따름이다. 평생 야구만 생각하며 살아온 SK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의 야구론을 듣다보면 그 자체로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듯, 안도 다다오의 건축 이야기는 때로 구체적이고 때로 추상적이지만 모두 통합적으로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고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의 문제를 자신이 평생 몸담고 일해온 분야로 이야기한다. 이 글 서두에 인용한 가우디의 건축에 대한 감탄은 현대건축이 가닿을 수 있는 가장 환상적인 현실을 목도하는 데서 기인한다.
완성된 건물만이 이 책의 소재로 오르는 것은 아니다. 안도 다다오는 1997년 교토역 신축 설계안을 국제건축 공모전에 제출했다가 떨어졌는데, 자신이 생각했던 교토역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결과적으로는 예산도, 부지도 모두 초과한 안이었지만)를 이 책에 다시 한번 펼쳐 보인다. 심지어 완공 이전의 공사현장 사진을 싣고 ‘미완의 에너지’의 매혹을 강조하는 대목도 있다.
예술가로서의 젊음과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열여덟 이후로 체중변화가 없도록 몸 상태에 신경을 쓰고 그만큼 치열한 고민을 잃지 않는다. 감탄하기에 앞서 배우고 싶은 자세다. “누구든 평생 한번쯤 폭발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길지 않은 삶에서 피카소처럼 몇번이나 폭발을 반복하며 야성의 고릴라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재능을 필요로 한다. 인간사회의 울타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야성의 고릴라도 스멀스멀 사육에 길들여진 동물원의 고릴라가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