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죽음.’ 며칠 전 받은 메일에는 이런 제목이 적혀 있었다. “한국영화계에서 10여년 동안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발신인은 “(한국영화계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생겨” 이 메일을 보낸다고 했다. 그는 짧지 않은 글을 통해 “한국영화판은 죽어가고 있다. 아니 이미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논지를 설명했다.
그가 꼽은 한국영화계의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시나리오작가에 대한 홀대, 투자사의 횡포, 투자 시스템의 낙후성, 제작 시스템의 후진성, 배우들의 리허설이 진행되지 않은 채 진행되는 촬영, 배급 시스템의 왜곡. 이같은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왔던 것이긴 하지만 그의 주장이 유독 설득력있게 들리는 건 영화현장의 밑바닥 정서를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사가 투자진행비, 캐스팅 주선비, 공동제작 진행비 등을 챙기는 탓에 그는 “스탭들의 임금은 5~6년 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감소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조수들은 물론이고 헤드 스탭도 생계를 위협받을 정도로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감독이 배우들과 제대로 된 사전 리허설을 진행하지 않음으로써 “현장 리허설이 길어지고 스탭들은 그 리허설을 지켜보며 사전에 준비할 여지가 사라진다… 경력이 오래된 연기자들은 리허설을 요구하는 것에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고 감독들은 준비가 되지 않은 채 현장에서 처음 인물을 접한다”고 지적한다. 그의 글을 읽으며 그동안 <씨네21>이 현장의 일선 스탭의 목소리에 얼마나 둔감했는지 깨달았고 반성했다.
그가 현장에서 겪어온 여러 문제는 극장에 걸린 한국영화들을 통해 바로 드러나고 있다. 이번 특집기사에서 세명의 평론가가 지적한 대로 2011년 상반기 한국 주류영화는 제자리를 맴돌거나 외려 거꾸로 가고 있는 느낌을 줬다. 그건 그가 메일에서 짚은 것처럼 투자사들의 “획일화된 투자 결정 시스템”과 절대적으로 관련이 있다. 아마추어 모니터 요원들을 통해 시나리오를 거르고 편집본을 평가하는 대기업 투자사의 시스템 말이다. 평균적인 관객의 눈높이로 작품을 판단하기 위해 고안된 이 시스템은 펑퍼짐하고 밋밋한 대중영화에 절대 유리하고 개성적이고 날선 감성의 대중영화에는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다.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등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데뷔한 감독들의 강렬한 영화를 생각해보면 이 시스템이 빚어낼 미래 또한 어두워 보인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메일을 끝맺었다. 우리 또한 그의 결론에 절대적으로 동의함을 미리 밝힌다. “한국영화의 죽음은… 한국영화자본의 탐욕과 더불어 영화산업을 시스템으로 만들지 못하는 영화산업 구성원들의 무지와 관성과 이기심에서 기인한다. (중략) 이제라도 좀 서로 마음을 터놓고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보자. 이러다간 한국영화 진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