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배급전쟁은 뜨거웠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화산고>가 격돌하고 다크호스 <두사부일체>까지 가세, 작은 영화들에게 극장은 ‘너무 먼 당신’이 되었고, 극장 잡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러나 <이것이 법이다>는 ‘반드시’ 극장에 걸려야 했다.
AFDF 코리아의 김선호 배급팀장이 <이것이 법이다> 배급에 목숨걸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AFDF에서 수입, 배급한 일본영화 <링-라센> <아바론> <쥬브나일>이 모두 흥행이 저조, 회사가 12억원 정도의 빚을 졌다. 한국영화 <아이 러브 유>에 부분투자했다가 3억원 정도 빚이 보태졌다. 하는 수 없이 투자와 제작을 겸했던 <조폭 마누라>를 포기하고 받은 돈으로 숨통을 틔웠고, 그 자금으로 <이것이 법이다>에 집중했다. 촬영현장을 제집 드나들듯 하며 스탭과 배우와 어우러졌던 그에게 <이것이 법이다> 배급은 영화 한편 푸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그건 “내 자식 같은” 영화였으니까. “현장에서 모두들 그렇게 고생하는 걸 두눈으로 봤는데, 극장 못 잡으면 그들의 고생은 어떻게 되나, 절대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죠.”
원래 12월21일 개봉예정이었지만, 큰 영화들을 피해 연말과 설의 중간인 1월에 개봉할까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흥행은 개봉날짜에 좌우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영화의 힘이다”라는 생각에 강행하기로 했다. 계약서 들고 서울에서 제주까지, 극장마다 찾아다니며 무조건 밀어붙였다. “원래 다혈질입니다. ‘안 되면 되게 하라’주의고요.” 목소리 높이던 끝에 모모 극장들 전화기가 2대쯤 날아간 다음날 “영화 달라”고 전화가 걸려왔다는 무용담은, 이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에피소드.
배급 일에 대졸학력은 필요없고, 오로지 무데뽀 정신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김선호씨의 전략은 ‘인간적인 영업, 인간적인 배급’이었다. “일일이 극장에 찾아가서 영화가 어떻게 나왔는지 모조리 이야기했고, 내 열성에 넘어간 극장들은 받아줬죠. 그렇게 받아준 사람들은 지금도 나한테 끊는다는(극장에서 내리겠다는) 전화를 못해요. 인간적으로 미안해서. 내가 너무 인간적으로 호소했나?” 또다른 배급전략은 발로 뛰기. 예고편이 만들어지자마자 서울시내 극장에 뿌려서 틀어달라고 떼를 썼다. 각 극장마다 보냈던 포스터는 붙여져 있나 감시하고, 예고편을 본 관객반응 체크하고, 영업 담당자 만나 술자리 마련하고, 경조사 챙기느라 쏟아부운 돈이 회삿돈 1천만원, 개인돈 700만원, 도합 1700만원. 그리고 전국 125개(서울 24개) 극장에 <이것이 법이다>가 걸렸다.
막강한 <반지의 제왕> 때문에 <이것이 법이다> 스크린은 절반 이하로 줄었지만, 개봉 2주 동안 전국 40만명(서울 10만, 지방 30만명)쯤 관객이 들어 “약간의 적자에 그칠 것 같다”고. 배급하면서 가장 힘이 빠졌던 순간은 그토록 호소하고, 애원하고, 부탁하고, 심지어 협박(?)까지 해도 거절당했을 때. 메인관 잡기가 가장 힘들었고, 결국 대한극장 하나밖에 잡지 못했다. “그래도 연말까지 버텨줘서 고맙죠.” 올해는 돈되는 영화 딱 한편 만들어 풀어서 극장 사람들에게 ‘마음의 빚’을 갚는 것이 새해소망이다. 글 위정훈 oscarl@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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