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세상>은 거대한 쓰레기장 얘기다. 쓰레기가 쏟아지고 또 쏟아지면서 산을 이룬 장관이 리듬감있는 매끈한 문장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진다. “검고 희고 붉고 푸르고 노랗고 알록달록 반짝이기도 하고 매끈거리기도 하며 네모나고 각지고 둥글고 길쭉하고 흐느적거리고 뻣뻣하고 처박히고…” 무당집마냥 기이하고 현란한 이 쓰레기장은 이젠 상암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선 난지도인데, 꽃섬이란 말만 나올 뿐 시공간이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지금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듯.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끊임없이 쓰고 버리는 욕망”이 쓰레기장에 의해 지탱된다고 보았단다. 자본주의가 현재진행형이듯 쓰레기도 현재진행형이라 과거에서 난지도를 캐냈다.
배경인 쓰레기장이 힘을 받다보니 상대적으로 서사가 죽어버린 느낌이다. 이야기는 반항적인 열네살 소년 딱부리가 엄마 따라 난지도에 와서 난봉꾼 새아빠와 약간 멍청하지만 착한 새동생을 만나고 비밀 아지트도 만들고 그렇게 세상에 눈을 뜨는 성장담이다. 헬리콥터가 날아와 소독약을 뿌리는 동네. 미군부대 담당 쓰레기차가 좋고 개척교회에서 나눠주는 라면이 반갑고 시내 가기 전엔 반드시 목욕탕에 들러야 하는 사람들. 수십 마리의 개를 키우는 빼빼 엄마는 신내림을 받은 까닭에 가끔 발작을 일으키고 속깊은 만물상 할아버지는 동네를 떠도는 파란 불꽃 귀신을 위해 메밀묵을 쑨다. 동네 풍경도 사람살이도 낯익고 벌어지는 일들도 예상 가능하다. 요약하자면 도시의 욕망 밑바닥에서도 사람들이 “싸움질도 했지만 화해도 잘했고 남녀가 서로 어우러져 함께 몇달 살다가 상대를 바꾸기도” 하며 산다는 얘긴데, 거기까지다.
얼마 전 강남의 몇 안되는 판자촌 동네인 포이동에 화재가 났다. 비닐과 스티로폼 같은 가연성 소재로 지은 집들이라 홀랑 다 타버렸단다. 시커먼 잔해 너머 타워 팰리스가 우뚝 선 사진, 동네를 다 철거해버릴까봐 화재현장을 떠나지도 못하는 이들이 집회하는 사진을 보자니 이 소설이 떠올랐다. 어쨌거나 참 ‘낯익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