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한국영화 재도약을 위한 영화인 컨퍼런스가 열렸다.
소녀시대가 파리를 열광시키는 동안 영화인들은 토론회를 가졌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주최한 이 토론회의 제목은 ‘한국영화 재도약을 위한 영화인 컨퍼런스’다. 어떻게 해야 한국영화도 K-POP과 같은 위상을 갖게 될 것인가가 이 토론회의 지향점이다. 이틀에 걸쳐 진행된 4회의 토론은 각각 이를 위한 선결과제들을 포괄했다. 글로벌 시장 개척, 영화 온라인 유통시장의 정상화, 공정거래환경 조성과 영화인 처우 개선, 그리고 영화진흥정책의 방향 등이다. K-POP은 이미 세계를 정복했는데, 한국영화는 왜 아직도 토론만 하고 있냐는 비난이 있을 수도 있다. 토론회에 앞서 인사말을 전한 김의석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도 그런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일부에서는 왜 자꾸 이런 토론회를 하느냐고 하는데, 최근 몇년간 영진위와 영화인들이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해를 풀고 소중한 의견을 모아 한국영화 도약의 밑거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표준근로계약서 확대적용 문제
영화진흥정책 방향 모색을 위해 마련한 의견수렴의 자리인 만큼 토론회 참가자들은 대부분 산업발전의 근간을 위한 정부의 지원과 정책, 관리에 대해 요구했다. 6월14일 오후 2시, 토론회의 문을 연 ‘글로벌 시장 개척’ 토론에서 김형준 CJ E&M 고문은 우수한 국제공동제작 프로젝트 발굴과 기획개발 및 투자유치 지원, 그에 맞는 전문인력 양성, 그리고 인센티브 지급을 통한 해외 프로젝트의 한국 로케이션 유치를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채희승 미로비젼 대표는 “미국과 아시아의 몇몇 국가들이 40% 이상의 로케이션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것에 비해 아직 25%에 머물러 있는 한국의 정책은 재정비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글로벌 시장 개척을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진위에만 의존하지 말고 외교통상부나 기획재정부 등 다른 부처와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영화로 인한 국가 이미지 제고로 매출 신장을 기대할 수 있는 기업의 지원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참가자들의 주된 의견은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한 창작인력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모아졌다. 김성수 감독은 “해외시장에 대한 이해와 역량을 지닌 프로듀서에게 지원을 해 그들이 용감한 게임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고, 관객석에서 마이크를 잡은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의 양종곤 대표 또한 “인력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이 3D 등 기술인력에 집중되어 있는데, 기획자들과 창작자들을 육성하는 것 또한 글로벌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근간이 될 것”이라며 “내년부터 그들에 대한 재교육 사업 등 구체적 지원 방안이 있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영화인력에 대한 투자와 지원의 필요성은 다음날 열린 ‘영화산업환경 개선방안’ 토론에서도 강조됐다. 김도학 M&E 연구소 소장은 ‘영화인 처우 개선을 위한 선결과제’라는 발표를 통해 “표준근로계약서의 의무화와 확대 적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개발만 해놓고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영화산업노조에 가입한 스탭들은 전체의 20% 정도다. 제작가협회가 만드는 영화 편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표준근로계약서를 활용하지 않는 제작사에 대해서는 각종 정부 지원사업의 참여를 제한하는 등 페널티를 적용하고, 표준근로계약서를 활용하고 4대 보험에 가입하는 제작사에는 영화발전기금을 통해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재의 영화인 신문고만이 아니라, 표준근로계약서를 법적으로 제도화하고 이를 위반한 것에 대해 감시 감독할 수 있는 노동위원회 형태의 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욱 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영화와 비디오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영화 스탭들의 복지문제를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실업기간의 생활안정을 모색하면서 스탭들의 교육참여를 늘리는 훈련인센티브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공정경쟁환경 조성에 관한 논의도 중요한 의제였다. 참가자들은 먼저 대기업 투자배급사 중심으로 배급과 상영, 케이블TV 등 부가판권시장이 수직계열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파생된 모순들을 설명했다. <워낭소리>를 제작한 스튜디오 느림보의 고영재 대표는 “2006년과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직권조사를 했을 때 반향이 컸다”면서 “꾸준하고 정기적으로 직권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인 당사자들이 현 시스템의 모순을 직접적으로 느끼겠지만 섣불리 문제제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1년에 한번씩은 직권조사가 이뤄져야 하며 영화인들에게 영화계의 공정지수를 묻는 설문조사도 필요하다.” 최현용 영화제작가협회 사무국장 또한 “대기업의 수직계열화 문제는 영진위가 개입할 여지가 적기 때문에 공정위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럼에도 영진위는 방송통신융합시대에 대한 대비 등 변해가는 환경에 적극적으로 비전을 제시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영화 온라인 유통시장 정상화 방안을 찾는 토론에서도 정부의 의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인디플러그의 김정석 대표는 “새로운 플랫폼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영화 합법 유통 플랫폼을 다변화하는 한편, 웹하드 등의 불법시장에 대한 강력한 조치와 영화 저작권 보호를 위한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영태 KMP 홀딩스 실장은 이를 위해 전기통신사업법상 웹하드 등록제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웹하드 업체들이 음란물이나 불법복제물을 유통해 거액의 수익을 올린 뒤 사이트 폐쇄와 개설을 반복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진입규제 및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가 정부에 대한 요구였다면 신씨네의 신철 대표는 영진위가 “온라인 영화시장의 고객들을 위해 한국영화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통로를 한곳에 모아놓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진위의 사업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
이번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들의 신선도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왔다기보다는 기존 아이디어와 제안을 한번 더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차원의 토론이었다. 전체 토론회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기획된 듯 보이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토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혜정 중앙대 교수는 발제를 통해 영진위가 영화인 고용환경 개선에 앞장서야 하고, 매체환경 변화에 대비해 대표 콘텐츠로서 영화의 위상을 유지해야 하며, 공정경쟁환경 조성과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협력체계 구축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며 앞에 열린 3회의 토론 주제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영진위의 모든 기능을 부산으로 이전하지 말고, 기능을 분리하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송낙원 건국대 교수)거나, “영진위의 사업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양종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는 의견도 나왔다. 물론 영진위의 역할과 기능도 결국 돈에 의해 좌우된다. 고정민 영진위원이 발제한 ‘영화진흥 재원에 대한 진단과 확충 방안’은 이 때문에 나온 주제로 보였다. 그는 “연간 지출액이 모금액보다 많아 현재 조성된 영화발전기금이 2020년에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2014년 종료되는 기금의 모금 기간을 연장하고 모금 대상도 IPTV나 방송사업자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진위의 역할을 영진위가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의견수렴은 된 듯 보인다. 이제는 토론회보다 구체적인 정책사업 설명회가 영화인들의 구미를 당길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