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강원도의 작은 마을로 간다고 했다. 한국영화계의 주요 프로듀서 중 하나로 꼽혀왔던 그는 마을에 친환경 주택을 직접 짓고 야생초와 수생식물을 기르면서 조용히 살겠다고 했다. 영화계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피곤한 일이 너무 많았어”라고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기 너무 힘들어졌고 기껏 만든 영화도 개봉하기 어려워졌으며 그런저런 사정 때문에 여기저기서 욕을 들어먹는 게 고단하다고 했다. 그러다가 이주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릿속에 들어왔는데 그게 그를 희망차게, 힘나게, 즐겁게 만들었다고 했다. “언젠가는 도시를 떠나려고는 했는데 좀 앞당긴 것뿐이지. 지금은 옮겨가서 할 일을 떠올리느라 행복해서 잠이 안 올 정도야.” ‘환송회’라는 이름의 작은 술자리에서 정말 행복이 깃든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그의 이주를 축복하는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입안에 감도는 술맛이 유독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재능이라면 충무로에서 괜찮은 기획을 해낼 수 있을 터인데 너무 일찍 은퇴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그럼에도 그를 만류할 수는 없었다. 지금 한국영화계에서 프로듀서가 처한 환경을 잘 알고 있기에. 투자사에 밟히고 감독에게 받히고 스탭에게 욕먹는 게 요즘 프로듀서들의 신세인데 어찌 ‘계속 고생하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저 ‘때가 되면 영화계로 돌아오겠지’라고 막연한 기대감을 갖는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프로듀서의 제자리 찾기’가 현재 한국영화산업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라는 데 공감했다. 그건 개별 영화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전체적인 산업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감독과 투자사가 ‘직거래’하는 현재의 모델은 아슬아슬하다. 그 가운데 프로듀서가 자리해야 감독의 과욕과 투자사의 탐욕을 제어해 안정적인 (상업)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문제는 프로듀서들의 지위를 되찾아주는 일이 인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제도를 만들거나 캠페인을 한다고 상황이 바뀔 수는 없다. 결국 프로듀서들이 자신의 능력을 드러냄으로써 극복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바로 그 능력 발휘의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까닭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때 프로듀서의 꿈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이같은 현실은 마음을 착잡하게 만든다(동시에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감도).
이럴 때일수록 뭉쳐야 한다. 1세대 프로듀서부터 신세대 프로듀서까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술잔을 부딪치면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 선배들이 자리를 깔고 후배들이 맞장구를 쳐주면 된다. 프로듀서들의 힘이 급격히 떨어진 것도 상장이다 뭐다 하면서 뿔뿔이 흩어져 고립되면서 빚어진 결과 아닌가. 이제 이주하는 그의 시골집이 지어지면 거기에서 떠들썩하게 프로듀서들만의 잔치를 벌여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