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회사들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실태를 보니,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조차 무색한 ‘제왕적 약탈’이다. 총수 일가 지분이 높을수록 더 심하다. 총수 일가 지분이 50%가 넘는 회사는 매출 중 계열사간 매출 비율이 평균 66%이다. 87%에 이른 곳도 있다(30대 그룹 평균 내부거래 비율은 28.3%). 이익은 고스란히 총수 일가에 돌아간다.
가령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현대 글로비스에 30억원 출자를 하고, 모회사로부터 일감을 몰아받은 덕에 10여년 만에 1조8천억원의 주식 평가 차익을 거뒀다. 현재로선 이런 수익에 상속세를 물릴 수 없다. 그야말로 ‘통 큰’ 세금 면탈 수법이다. 삼성과 SK, LG 등 다른 재벌 그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런 편법 상속·증여에 과세하는 방안이 검토 중인데, 대체 지금까지는 뭘 했나 싶다. 법인세는 법인세대로 낮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더니, 그 이면에는 ‘상속하기 좋은 환경’이 이렇듯 판치고 있었다.
그들이 부를 대물림하며 아비와 아들이 ‘초과이익을 공유’하고 ‘동반성장’할 동안, 서민들의 가계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 개인 빚 1천조원 시대에 접어들었다(공식적으로만). 갚을 만하면 상관없겠지만 지난 3년간 개인 금융부채는 연평균 7.9%씩 증가했다. 1인당 실질소득 증가율의 세배에 이른다. 돈 쓸 일이 갑자기 줄지 않는 한 용을 써도 못 갚는다. ‘빚 권하는 정책’의 파산이다.
전세값이 오르면 전세대출, 내집 마련이 어려우면 주택담보대출, 등록금이 오르면 학자금대출…, 금융권에서 돈 빌리기 어려운 서민과 자영업자들에게는 각종 빛나고 웃음 띤 이름의 대출상품을 정부 주도로 만들었다. 눈 가리고 아웅식 돈놀이 외에 어떤 정책을 폈는지 모르겠다. 부동산·건설 정책? 결국은 경기 부양을 빙자한 돈놀이였다. 정부가 이러니 민간은 오죽하겠는가. 대한민국 성인들에게 하루에도 몇번씩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수많은 실장 팀장들은 다들 ‘빠르고 간편한’ 대부업체 직원들이다.
적은 돈으로도 안전하게 살 수 있다면, 자식들 공부시키고 아플 때 병원 갈 수 있다면, 철마다 싼 집 구하러 돌아다니지 않을 수 있다면, 누가 갚지도 못할 빚을 지겠는가. 세금 몇푼 더 내는 것에 대해 폭탄 운운하며 기겁하는 동안 이렇게 많은 지뢰가 발밑에 깔려버렸다. 정작 천문학적인 감세 혜택을 보는 이들은 이런 생존의 전쟁터에 애초 발을 딛지 않은 이들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