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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계상] 내겐 너무 다정한…마초?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1-06-20

<최고의 사랑> <풍산개> 윤계상

요즘 독고진 다음으로 바쁜 남자를 만났다. 폭발적인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말에 윤계상은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든다. “정말 그래요?” 매일 촬영장에서만 지내다보니 <최고의 사랑>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단 당연한 칭찬이 그에겐 영 어색하단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본인의 체감지수에 불과하다. 드라마와 맞물려 영화 <풍산개> 개봉까지 겹치면서, 그는 정말 지금 현재, 가장 주목받는 최고의 배우가 됐다.

윤계상이, 정확히 말하자면 <최고의 사랑>의 윤필주가 해낸 가장 로맨틱한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구애정의 귀를 틀어막는 행위였다. 구애정이 자신의 험담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 불쑥 그녀의 귀를 가려주는 순간, 구애정을 제외한 모든 여성들의 마음이 윤필주에게 가 닿았다. ‘윤필주’는 무데뽀에 안하무인인 남자의 정반대인, 자상하고 로맨틱하며 귀여운 남자를 지칭하는 대표 용어가 됐다. god 이후 주춤했던 윤계상의 ‘인기’가 회복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윤필주로 인해 배우 윤계상의 매력도 재발견됐다. “연기자가 되고 싶은 생각에 항상 기존의 내 이미지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정답만은 아니더라. 내 취향만 고수할 게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나를 보여주고 그 다음에 시도해도 늦지 않겠더라. 이번에 그걸 알게 됐다.” 전적으로 따지자면 그는 흥행작 하나 없는 배우였다. 가까이 보자면 드라마 <트리플>과 <로드 넘버 원>은 기대와 달리 시청률 고배를 마셨고, 영화 <집행자>나 <조금만 더 가까이>는 성과를 떠나 주목받기에는 워낙 소규모였다. “이번엔 사랑받는 드라마, 대중적인 작품을 해야겠다 싶었다. <최고의 사랑>을 선택한 것도 그 이유가 컸다.”

다정한 ‘윤필주’와 마초 ‘풍산’의 간극

손쉬운 선택 같지만 사실 만만치 않은 게임이었다. 좌로는 대한민국에서 멜로를 가장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공효진이, 우로는 날 때부터 코믹연기를 몸에 장착한 게 분명한 차승원이 포진한 형국. 윤계상은 그 격전의 장에서 매력을 십분 발휘해 자기 존재를 한껏 과시한다. 좀 섭섭하지만 사실 이런 윤필주의 어느 한구석도 자연인 윤계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그는 “연애를 그렇게 ‘달달하게’ 하는 성격은 못 된다”며 지난 몇주간 윤필주 되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저돌적인 독고진에 비해 늘 속으로 삭이는 윤필주가 답답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고민이 많았다. 너무 가만히 있는 캐릭터를 하다보니 내 성질이 막 나오더라. (웃음) 독고진을 보면 나도 뭔가 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인터뷰가 끝나면 바로 또 촬영장으로 가야 한다는 그는, 오늘 받은 따끈따끈한 대본을 살짝 넘겨든다. “요즘 매일매일 대본 받고 연습하고 촬영장에서 산다. (대본을 넘기다가) 아, 오늘 한의원 장면 추가됐네. 좀더 나와야 하는데. (웃음) 아직 어떻게 될지 나도 궁금하다.”

윤필주의 고공행진에 대한 반향에도, 아무래도 ‘강한 남자의 면모’는 배우 윤계상에겐 해소되지 않은 지점들임에 분명하다. <최고의 사랑>의 윤필주가 우리가 바라던 윤계상의 이미지라면 곧 개봉할 <풍산개>는 그런 고민을 해소해줄 적절한 타이밍에 찾아 온 그의 도전이다. 윤계상은 영화에서 남과 북, 휴전선을 맨몸으로 오가며 이산가족의 물건이나 사연을 전달해주다가 뜻하지 않게 사랑에 빠지는 남자 ‘풍산’을 연기한다. 특이하게도 영화를 통틀어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탓에 도대체 이 남자의 심중이 무엇인지 알 길 없는 고독한 남자기도 하다. “마초 같은 배역을 무척 하고 싶었다. <로드 넘버 원>을 하면서 시청률도 안 나오고 사람들도 몰라주니 너무 억울하더라. 그때 고생하면서 배운 것들이 있는데 한번만 더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했다. 기다리고 있던 차에 ‘풍산’ 캐릭터가 들어왔다. 욕심나더라.” 시나리오에 써 있는 ‘유령 같은 한 남자’가 풍산을 설명해주는 단서였다. 분단국가의 현실이 만들어낸 기계적인 한 남자가, 사랑을 느끼면서 자기를 희생한다는 점에서 그의 매서운 눈빛이 오히려 명확하게 다가왔다. 정작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그 남자의 외형, 행동을 만드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며 6kg을 감량했고, 휴전선을 넘나드는 설정 탓에 지난해 겨울 한파주의보가 내리던 날도 전라로 물속에 들어가는 극기를 감내해야 했다. 영하 16도를 넘나드는 추위 속, 몸이 얼기 전 온몸에 진흙을 바르는 장면은 다시 되돌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촬영 과정이었다. 타르 30mg의 독한 ‘풍산담배’를 연방 피워대는 장면 탓에 어지러움증을 견뎌야 했고, 괴성을 지르는 장면에선 목이 다 쉬어버렸다. 초반에 아이를 업고 가는 장면에선 예산절감 차원에서 더미 대신 진짜 아이를 업고 가다가 다친 허리가 악화되기도 했다. 한달간의 촬영 기간, 윤계상은 불평 한번 없이 이 모든 수고를 감내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역이 아니었다.” 함께 작업한 전재홍 감독은 대사 한마디 없는 표정연기, 체력적인 한계에도 꿋꿋이 임해준 배우가 마냥 고맙다. “윤계상에겐 모두들 부드러운 이미지만을 구하는데 그 못지않은 야성이 있다. 실력에 비해 너무 과소평가된 배우다. 선입견을 버리고 그를 바로 보고 싶었다.”

돈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았던 도전

그런 의미에서 윤계상은 ‘풍산’이 되어 겪은 고충이 아깝지 않다. 김종관 감독의 <조금만 더 가까이> 이후 이번에도 개런티 없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좋은 영화가 자본 때문에 제작되지 않는 요즘 영화계의 현실이 슬펐다. 마음 맞는 사람들이 있다면 무조건 해야지 싶었다.” 그는 이번 도전을 돈의 문제와 분리시킨다. “가수 생활을 하면서 인기도 얻어 봤다. 그런데 그건 한순간이더라. 좋은 시절이었지만 이젠 추억이다. 배우가 된다는 건 조금 더 길게 봐야 하는 일이다. 돈 때문에 그 과정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확실히 연기는 지금 배우 윤계상에겐 최고의 고려사항이 분명해 보인다. “아직 생각하는 것의 50%밖에 표현이 안된다. 노력해서 80~90%가 될 수 있도록 지금은 차곡차곡 쌓아가는 수밖에 없다. <최고의 사랑>의 꼭 나일 것만 같은 모습도, <풍산개>의 강한 모습도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의 하나다. 길게 보고 하는 도전이니 부디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배우 8년차, 이제 막 가수 생활보다 길어진 배우 커리어를 통과한 그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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