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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괴물이 되었다
이화정 사진 백종헌 2011-06-16

변영주 감독의 <화차>(가제)

“그전에 한 말 그대로 복사하기 해도 될 판이다. (웃음)” 2009년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발레교습소>(2004) 이후 오랜만의 신작 계획을 야심차게 발표하고 인터뷰까지 끝낸 뒤 <화차>(가제)의 크랭크인은 투자난항을 겪으며 연기됐었다. 변영주 감독이 거듭된 출사표에 먼저 민망함을 표한다. 어쨌든 고난은 과거사, <화차>가 7월 크랭크인을 목표로 재정비됐다. 그 지난함 속에 10고의 시나리오가 나왔고, 덕분에 탄탄한 프리 프로덕션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변영주 감독에게 <화차>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프로젝트가 됐다.

이야기의 골격은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원작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교코’라는 한 여성의 갑작스러운 실종. 미궁에 빠진 그녀의 정체를 밝혀나가는 도중 베일에 싸인 그녀의 비밀이 드러난다. 사채빚 때문에 빚쟁이들에게 몰린 교코는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 뒤 ‘쇼코’라는 여성으로 신분을 위장하며 살게 되고 결국 파국을 맞는다. 문제는 이 원작을 영화적인 틀이 될 수 있게 명확하게 정립하는 일이었다. 첫 번째 고민은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였다. “교코는 현시점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다. 문학에선 가능하지만 영화로는 불가능한 시점이다. 그렇다고 교코를 전면에 내세우면 원작의 의미와는 멀어지게 된다.” 해결책은 하나였다. 소설에서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 ‘혼마’의 1인칭 관점 대신 영화에선 교코에 해당하는 ‘선영’(김민희)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람, 즉 그녀가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목도한 인물을 개입시키는 것이다. 결국 원작에서 도입부 2페이지에 잠깐 나오는 선영의 약혼자가 이 끔찍한 사건을 풀어나갈 영화 속 메인 캐릭터 ‘문호’(이선균)로 확립됐다. 여기에 이 추적에 도움을 주는 실질적인 캐릭터로 문호의 사촌형이자 전직 형사인 캐릭터 ‘종근’(조성하)을 고안해냈다. 문호가 심리적인 수수께끼에 접근하는 인물이라면 종근은 미스터리의 핵심인 선영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증명해줄, 형식 면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메인 캐릭터가 확립된 뒤 또 하나의 과제는 교코와 쇼코, 영화 속 선영과 경선이라는 인물의 기술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필요했다. 흔히 소설 속 교코가 굉장히 치밀하고 지적인 사람이라 여기고 동정의식까지 가진다. 그런데 교코의 범죄는 프로의 것이 아니다. 잔혹한 범죄를 통해서라도 자신을 떠밀어낸 세상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어 한 여성이었다. 그녀가 지녔던 이 욕망을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는 그래서 교코에 해당하는 선영의 범죄를 합리화할 섣부른 장치를 끌어오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이건 기리노 나쓰오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팜므파탈의 여성, 사건을 주도하는 여성이 아닌 사회적 욕망 속에서 실패한 괴물이 돼가는 여성에 대한 지켜보기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수렴될 지점은 2011년 대한민국의 현재다. 원작의 배경이 된 1990년대 초반,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일본사회에 몰아닥친 광풍을 고도의 자본주의사회, 물질에 대한 욕망이 들끓는 대한민국의 현재로 치환하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일어나고 있을지 모르는, 일어나고 있는, 혹은 이미 일어난 가장 끔찍한 사건. 변영주 감독은 두눈 똑바로 뜨고 이 현실을 지켜보려 한다. “연쇄살인마도 떼죽음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라는 괴물을 알게 되기까지의 과정, 그 자체에서 오는 긴장을 통해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비장함을 전달하는 게 목표다.” 그런고로 <화차>는 피 한 방울 나오지 않고도 심장을 죄어올 심리스릴러이자 가장 정통에 가까운 정공법의 연출이다. 7월 크랭크인한 영화는 서울, 진해, 마산, 창원, 제천 등의 촬영을 거쳐 9월 중 촬영을 끝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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