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5일 수요일, 서대문의 한 레지던스 호텔에서 <특수본: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 촬영이 한창이다. 최근 주연배우 엄태웅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선배 성동일과의 장난스런 키스신 등 현장 사진을 종종 올리면서 화제가 된 영화다. <특수본>은 의문의 경찰살해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담당할 특별수사본부가 마련되면서 상이한 성격의 두 형사, 김성범(엄태웅)과 김호룡(주원)이 그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담은 범죄액션영화다. 성범이 다년간 쌓은 현장 경험과 동물적 직감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베테랑 형사라면 FBI에 연수를 다녀온 범죄심리학 박사 호룡은 귀국 뒤 자원하여 특수본에 참여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성격으로 인해 사사건건 갈등을 빚지만 사건을 파헤칠수록 배후에 있는 거대 권력과 마주하게 되고, 결국 선머슴 같은 열혈 여형사 정영순(이태임)과 함께 제2의 특수본을 만들어 수사를 해나가게 된다.
<특수본>은 70%가량 촬영이 진행됐다. 지금은 서로 갈등하던 성범과 호룡이 본격적으로 힘을 모아가는 단계에 이르렀다. 촬영 당일, 팀장의 죽음 이후 장면. 착잡하고 초췌한 표정의 호룡이 멍하니 벽에 붙은 관련 사진과 자료들을 마구 떼어내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술을 전혀 못해서 다른 감정신보다 이런 장면 촬영이 제일 힘들다”는 게 주원의 웃음 섞인 얘기다. ‘강동원의 도플갱어’ 같다는 얘기와 함께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구마준 역할로 이름을 알린 그는, 곧 개봉할 <미확인 동영상>에 이어 <특수본>에서 좀더 개성있는 성인 연기에 도전하고 있다. 성범과 비교해 흔들림없이 비범한 사건분석 능력을 뽐내는 냉철한 캐릭터다.
한편, 최근 여러 한국영화들에서 맛깔나는 감초 연기를 선보여온 성동일이 그들의 선배이자 특별수사본부의 팀장인 박인무로 출연하는데, 평소 후배 형사들의 생명과 경찰조직의 안위 등 모든 짐을 짊어진 것처럼 일하며 신망을 얻어온 그의 죽음은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팀의 주인을 잃은 성범과 호룡은 자기들 때문에 선배가 죽었다는 죄책감이 번져 서로 주먹다짐까지 벌이게 된다. 하지만 평정심을 되찾고 사건을 직시하면서 성범은 호룡을 찾아가 입금전표 더미를 내민다. 이날 촬영에서 엄태웅은 주원을 찾아가 “놈을 잡을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말이나 하라”며 국면 전환을 암시하는 대사의 톤을 다듬느라 고심했다. “인무 형 집에서 전표를 찾았다”는 성범의 말에서 인무가 사실 오래전부터 검은돈과 연결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성범은 이 장면에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후 영순과 함께 낡은 상가 건물의 허름한 창고를 빌려 제2의 특수본을 꾸리게 된다. 경찰살해사건의 진상은 물론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쓰게 될지도 모를 선배의 명예를 위해.
<특수본>에서 불처럼 뜨거운 엄태웅과 얼음장 같은 주원의 상반된 캐릭터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중심축이다. 갈등하던 두 남자가 어느샌가 힘을 합쳐 공동의 적과 싸운다는 범죄스릴러 버디무비의 공식은 해묵을 대로 해묵은 이야기지만 언제 봐도 흥미롭고 재밌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언제나 일체의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채 촬영에 임하는 거친 모습의 엄태웅과 “형과 달리 매일 촬영 전 1시간 정도 신부화장을 한다”는 주원의 대비가 극명하다. 지금껏 강동원을 닮았다는 얘기를 지겹도록 들어왔지만 <특수본>에서 파마를 한 주원의 모습은 더욱 그런 것 같다. 게다가 어린 나이의 범죄심리학자로서 굉장히 ‘각 잡힌’ 인물이라, 캐릭터에 임하는 긴장감부터가 이전과 다르다. 이제 막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 빠져나온 엄태웅도 마찬가지다. 특히 TV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2일>과 함께 촬영을 진행하게 된 작품이어서 더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개의 촬영장에서 서로 다른 근육을 쓰고, 전혀 용량이 다른 외장하드를 쓴다는 느낌으로 그 경계를 잘 오가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낸다.
끝으로 <특수본>은 마치 이 장르와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나의 결혼원정기>(2005)의 황병국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기에 더 호기심이 생기는 영화다. 최근에는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에 ‘30만원 받는 국선변호사’ 역할로 우정출연하며 마치 배우처럼 각인되기도 했지만 그는 끈끈하고 정감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연출자다. 엄태웅도 “보기만 해도 인간미 넘치게 순박하게 생긴 감독님이 범죄누아르 혹은 스릴러 장르를 연출하는 데서 오는 묘한 긴장감과 매력이 있다”며 “<특수본>이 지난 몇년간 충무로에서 나온 여타의 남성적 스릴러영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거기서 기인할 것”이라 말한다. 이제 <특수본>은 굵직한 액션신 촬영을 남겨둔 채 크랭크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황병국의 휴먼 누아르,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영등포스런’범죄액션 버디무비다
황병국 감독 인터뷰
-<나의 결혼원정기> 이후 거의 6년 만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TV영화 <오프라인>(2008)을 연출했다. <특수본>은 스릴러라는 점에서 <오프라인>과 접점이 있어 보인다. =<나의 결혼원정기>가 전형적인 내 화법이라면 2억5천만원의 저예산으로 찍은 <오프라인>은 새로운 시도였다. <특수본>으로 이르는 징검다리가 된 건 맞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영화를 하건 내가 좋아하는 인간들을 집어넣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그런 점에서 <특수본>은 강남이라기보다 뭔가 ‘영등포스러운’ 범죄액션 버디무비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웃음) 애초에 받은 시나리오는 사건 중심의 영화였는데 그걸 인물 중심의 이야기로 각색하는 데 공을 들였다.
-장르적 차이도 있지만 여러모로 이전과 다른 현장 분위기도 많이 느낄 것 같다. =일단 영화도 현장도 빨라졌다. 그게 ‘미드’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이젠 스릴러영화를 보면서 ‘툭’ 들어가는 느낌의 장면들이 있다. 뭔가 매끄럽게 설명되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데도 관객 또한 그런 느낌을 좋아한다. <특수본>은 15세 관람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그런 속도감도 큰 고려대상이다.
-엄태웅과 주원에 대한 얘기를 해준다면. =관객은 결국 배우의 눈을 본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엄태웅은 아주 좋은 눈을 가졌다. ‘한국의 제임스 딘’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대사나 제스처가 아닌 무표정에서 오는 깊은 느낌이 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그는 배우를 채우는 덕목 중 성실함에서 정말 남다르다. 일단 짜증을 안 낸다. (웃음) 정말 작업하기에 편한 친구 같다. 주원은 실제보다 더 나이 많은 캐릭터를 연기해야 해서 우려가 많았는데 첫날 테스트를 하며 그런 게 말끔히 사라졌다. 뮤지컬을 하던 배우라 그런지 에너지의 강도가 높다. 그리고 성동일, 엄태웅 선배 등과 함께하며 자연스레 부담을 덜어냈다. 이전에는 내가 생각한 캐릭터에 배우를 맞춰가는 방식이었는데 <특수본>은 반대다. 배우에 맞게 인물을 집어넣는 방식도 꽤 흥미롭다는 걸 매일 느낀다.
-70%가량 촬영을 끝내고 이제 굵직한 액션장면들을 남겨뒀다고 들었다. =김성수 감독님 밑에서 <태양은 없다> <무사> 조감독을 하며 액션영화 경험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김성수 감독님도 그런 내 성향을 아셔서 액션장면보다는 드라마적인 부분에서 주로 나에게 모니터를 하셨다. 그럼에도 <특수본>은 남성적 액션의 비중을 높여야 하기에 어떻게 좀 차별화를 할까 많이 연구했다. 최근 한국영화의 그런 남성영화들이 일방적으로 드라이하고 센 묘사로 간다면 좀더 ‘라이트’한 측면으로도 충분히 감정을 담아낼 수 있다고 봤다. 같은 장르라도 내가 찍어서 다를 수 있는 ‘휴먼 범죄액션영화’라고나 할까.
-구체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액션연출의 방점이 있다면. =액션도 감정이 있어야 한다는 건 뭐 당연한 얘기고, 일단 요즘 액션영화들은 거의 ‘본 시리즈’ 스타일이 판을 치는 것 같다. 그와 달리 가면서도 더 인상적이고 개성있는 액션장면들을 연출하고 싶은데 전체적으로 3개의 신 정도에 힘을 줬다. 기본적으로 사무라이영화를 많이 봐서 ‘본 스타일’보다는 한 합에 끝내는 힘있고 단호한 액션장면을 좋아해 그런 느낌을 살리려고 애썼다. 두 번째로 배우 김정태가 중장비 지게차로 경찰차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여러모로 자신있는 장면이다. (실제로 이 장면 촬영을 위해 김정태가 중장비 자격증까지 직접 따서 연기했다며 지난 촬영분을 자신있게 보여줬다-편집자). 마지막으로 엔딩의 총격신도 기대하고 있다. 이제 진짜 힘 좀 써야 할 때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