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서울 근교에 자리한 발암교가 폭발한다. 언론은 북한 간첩단의 소행이며 애초에 발암교 인근에 있던 놀이공원을 목표로 삼았으나 빗나간 것으로 추정한다. 사건은 그렇게 진정될 기미를 보인다. 하지만 냄새가 난다. 얼핏 게으른 것 같지만 기민하기 이를 데 없는 사회부 기자 이방우(황정민)는 그렇게 생각한다. 때마침 예전 동네 후배 녀석인 윤혁(진구)이 탈영했다며 이방우를 찾아오고, 윤혁이 이방우에게 가방 하나를 건네준다. 그 안에 들어 있는 플로피 디스크들이 발암교 사건의 실체를 증명해줄 자료들임을 이방우는 곧 알게 된다. 이방우는 신문사의 두 동료 손진기(김상호), 성효관(김민희)과 함께 특별취재팀을 꾸리고 발암교 사건을 파고든다. 하지만 실체에 다가갈수록 무언가 단단한 벽, 거대한 힘이 있다는 걸 직감하게 된다. 어느 날 의문의 사내들이 그들을 쫓고, 쫓기던 이방우 일행은 역으로 단서를 찾아내어 그들의 뒤를 캔다. 감독은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1990년 당시 보안사 소속이었던 윤석양 이병이 군의 민간인 사찰 사건을 양심 선언했던 일이다. 그들이 대학가 앞에 위장 개업한 술집의 이름이 실제로 ‘모비딕’이었는데 감독은 거기에 영감을 얻어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이 전하는 정서를 함께 결합한다.
밝혀진 것 안에 숨은 것이 도사리고 있고 힘 위에 힘이 존재하며 대부분은 그걸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는 자는 소수일 뿐 안다고 해도 그들의 필사적인 항변은 곧 무력해질 위험에 처한다는 것이 음모론 장르를 즐기는 재미다. 음모론은 주인공의 무력함이 매력인 장르다. <모비딕>은 정부 위에서 정부의 노릇을 하는 집단이 있다는 걸 알아낸 소수의 언론인이 필사적으로 진실에 접근해 들어가지만 거대한 벽에 부딪히게 된다는 이야기다. 일련의 사건들과 추격전들은 구성적 밀도감이 느껴지고 흥분도 잘 전달된다. 전체의 이야기가 듬성해 보이는 것은 모략의 주체(누가 최종 조종하는가?)가 한눈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일 것인데, 음모론 장르에서 그들의 전면적인 등장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주인공들이 모종의 단서를 찾아내고 막연하게나마 한발씩 나아가다가 결국엔 벽을 만진다는 이 미완의 해결이 더 중요하다. <모비딕>의 주인공이 작게 승리할수록 영화 <모비딕>은 더 큰 영화적 미덕을 얻는다. 그리하여 완전한 해소를 향하지 않은 점이 이 영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봉준호와 최동훈과 나홍진의 어느 사이에 있는 장르적 틈새를 향하고 있으며 혹은 <조디악>의 리듬감에 일반의 할리우드 음모론 영화들의 전략을 결합하고자 한 이 영화는, 한국 사회사에 상존하는 사회적 불쾌를 장르적 허풍으로 찔러서 쾌를 만들어낸 흥미로운 오락영화의 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