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매거진’이다 뭐다 해서 정 없는 와중에도 <모비딕> 시사를 보러간 것은 ‘대한민국 최초 음모론’이라는 홍보 문구 때문이었다. 음모론은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분야다. 얼마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실렸다는 ‘세계 10대 음모론’도 흥미로웠다. 구글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음모론을 정리한 이 기사에서 1위는 9·11 테러가 미국 정부 소행이라는 내용이고 2위는 UFO와 외계 생명체로 온갖 실험을 했다는 미국 네바다의 ‘에어리어 51’ 기지에 관한 것이었다. 후자가 영화, 드라마, 만화 등 대중매체에서 수없이 언급되면서 음모론을 대중화한 전통 이론이라면, 전자는 게릴라 다큐멘터리 <루즈 체인지> 시리즈 등을 통해 확산돼온 최신 음모론이다. 전통 이론이건 최신 이론이건 음모론이 흥미로운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거나 설명이 미진한 사건에 관한 해답이 되기 때문이다(물론 그게 진실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런 점에서 한국만큼 음모론 소재가 많은 곳도 흔치 않다. 김구, 신익희, 장택상 암살사건이나 장준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의문사, 아웅산 테러사건, KAL기 폭파사건에 이르기까지 음모론자들의 안테나를 자극할 법한 대형사건이 줄지어 있다. ‘은폐가 의심을 낳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천안함 침몰사건처럼 의문점이 많은 사안에 의심만 던져도 불순분자로 몰아붙이는 분위기는 음모론을 더 부추긴다. 그러니 ‘정부 위에 정부가 있다’는 <모비딕>의 가설이 궁금하지 않을 수 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비딕>은 ‘음모론’을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재미없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외려 그 반대다. 거대한 음모의 끝자락을 붙든 채 싸움을 벌이는 기자들을 일선에 내세우는 이 영화의 묘미는 ‘깃털’에서 출발해 ‘몸통’을 밝혀내는 쾌감이 아니라 그 진실을 추구하는 방식의 흥미로움에 있다. 건설 중이던 다리가 폭파되자 정부는 이를 간첩의 소행으로 몰아붙이고 더욱 거대한 음모를 진행한다. 황정민을 비롯한 기자들은 전혀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다. 각각 진행되던 두개의 이야기가 만나는 순간부터 <모비딕>은 폭발하기 시작한다. 논리적 정합성이 다소 헐겁긴 해도 이야기의 긴장력과 리듬이라는 측면에서 <모비딕>은 올해 만난 상업 장르영화 중 최고 수준이다. 주제와 표현의 일관성도 칭찬할 만하다. 결말이 주는 둔중한 울림은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서 에이허브 선장이 들려주는 다음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사물의 이면을 다시 한번 보게. 모든 가시적인 것들은 사실상 종이 가면에 불과한 걸세… 모비딕이 대리인이든 아니면 실체이든 상관하지 않아.” <모비딕>이 음모론을 화끈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사실이 여전히 아쉽지만, 주목할 만한 영화라는 점에서 다음호를 통해 상세하게 다룰 것을 약속드린다.
ps. <씨네21>의 야심찬 ‘음모’도 드디어 실체를 드러낸다. ‘디지털 매거진’ 정식 유료버전이 6월14일 808호에 맞춰 출시된다는 이야기. 부디 이 음모에 많이들 휘말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