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대학 문턱에 들어선 초년생에게 대학은 진리와 자유의 공간이었고, 만권의 책이었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문장이었고, 지적 갈증을 축여줄 명강의였고, 사랑과 진리 등 온갖 좋은 것들이었다./ 나는 그런 것들로 나만의 아름다운 비단을 짤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막 베틀에 앉아 내가 꿈꾸던 비단은 한 뼘도 짜기 전에 무참히 중턱을 잘리고 말았다. 전쟁은 그렇게 무자비했다.”(박완서 에세이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중) 작가의 마지막 에세이는 대학 생활에 대한 절절한 미련을 담고 있다. 스무살에게는 스무살의 꿈이 있다. 마흔에 예순에 그 꿈을 되살려볼 수는 있겠지만 더이상 같은 빛깔이 아니다.
등록금을 누가 어떻게 대느냐에 따라 인생이 갈리는 학생들의 사연을 보면서, 오늘날 청춘한테 등록금이야말로 ‘전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 학점이 안 나오면 장학금 받기 어려울까봐 듣고 싶은 과목을 포기해야 하고, 수업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 알바를 해도 꼬박 일년 일해야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한다. 군복무 중에도 월급 받아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내키지 않는 학군단에 지원해야 하며, 등록금이 더 뛸까봐 휴학도 못한다. 아무리 기를 쓰고 공부해도 절대 시간 부족으로 학점 관리는 되지 않는다. 아름다운 문장도, 지적 갈증을 축여줄 명강의도, 만권의 책도, 진리와 자유도…, 꿈조차 꿀 수 없는 것들이다. 대학은 상아탑에서 우골탑, 급기야 인골탑이 됐다. 경쟁은 진작에 끝났다. 부모의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다수의 학생들에게 대학은 출세길도 아니다. 입학과 동시에 채무자 신세다.
교육 사업을 빙자해 온갖 혜택은 다 누리면서 등록금으로 땅 사고 건물 짓고 재산다툼 벌이는 사학 재단의 각성을 촉구하기는 글렀다. 사립학교법 개정 논의 당시 종교인들의 삭발투쟁에서 확인했듯이 대대손손 해먹을 화수분을 그들 스스로 깰 리 만무하다. 엉겁결에 한나라당에서 ‘반값 등록금’ 얘기가 나온 것은 최소한 민의를 살핀다는 흉내라도 내려는 의도였다. 부실 대학에 세금을 퍼준다느니, 이참에 기여입학제를 도입하자느니, 망발이 쏟아지지만 본질은 하나다. 이 정도의 국민소득을 유지하고 재정지출을 하는 나라에서 이런 살인적인 등록금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가하는 건 미친 짓이라는 것. “스무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박완서)들을 더이상 양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전쟁’은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