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의 기적>은 네명의 주인공을 차례로 등장시킨다. 첫 번째 주인공은 영화감독 준문씨다. 그는 독립영화 감독인데 한눈에도 창작자 특유의 민감한 촉수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 민감함은 때론 주위를 의식하는 소심함을 몰고 와 현장에서 스탭들을 지휘해야 하는 감독으로서의 그를 괴롭힌다. 두 번째 주인공은 병권씨다. 그는 활동가로서 이 사회의 차별 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다. 세 번째 주인공은 영수씨다. 그는 서울에 상경한 지 10여년쯤 되었고 식당을 운영하는 요리사이며 평소 가장 아끼는 취미 생활은 친한 친구들과 함께하는 합창단이다. 네 번째 주인공은 욜씨다. 회사에 다니는 그는 친절하면서도 단호하다. 그는 1000일 전 자신의 사랑을 찾았고 지금까지도 사랑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상대방의 무엇을 알고도 사랑에 빠진 것인지 알게 된다면 우린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준문, 병권, 영수, 욜씨는 전부 게이다. 이 영화를 만든 이혁상 감독도 게이다. 이들은 <종로의 기적>을 통해 자신들의 성정체성을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한다. 감독과 주인공들 사이에 또렷한 친밀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친밀함보다 작품을 더 든든하게 만드는 것은 밀도있는 구성력이다. 어떤 이야기가 어느 자리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영화는 잘 알고 있다. 준문씨는 마침내 난관을 극복한 자력 갱신 이야기를 완성하고 병권씨는 여전히 씩씩한 현재진행형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영수씨의 이야기는 환하고 밝은 동시에 슬프기 이를 데 없는 극적인 인생사가 되고 정욜씨의 이야기는 놀랍고도 당당한 사랑의 약속과 실천의 사례가 된다. 그러니 <종로의 기적>이 쾌활하게 그려낸 네 가지 삶의 이야기를 ‘삶의 네 가지 색 무지개’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