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무관하지만 내용이 상충하는 듯한 외신 둘. 하나. 멕시코 마약조직간 알력다툼이 휩쓴 자리에 머리가 잘린 시신 수십구가 발견되었다는 원초적 토픽. 둘. 영국 일간지 <가디언> 대담에서, 머리를 컴퓨터에 빗대 머리 작동이 멈추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제로(0) 상태와 똑같아 사후세계란 한낱 허구에 불과하다 답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간결하고 모던한 정리. 인간의 마음/존재가 사랑의 부호(♥)를 닮은 심장에 자리한단 믿음은 비단 불경의 가르침을 넘어, 과거 폭넓게 퍼졌다. 그러나 뇌신경학의 발전은 마음의 지휘통제권을 심장에서 라면다발 모양의 두뇌에 이양했다.
기요틴 처형을 공공연히 행한 18세기 이후 참수의 전근대성은 인본주의의 대두로 지탄받으며 역사 속에 묻히는 듯 보였다. 그렇지만 현대 문명사회조차 목을 자르는 미개한 살해의 실상을 틈만 나면 접한다. 알카에다는 인질로 잡은 외국인들을 잇따라 참수 처형했고, 그 전모를 녹화한 영상 파일을 온라인에 살포해 시대를 역행하는 시각 충격을 던졌다. 다름 아닌 21세기의 사건이다. 마음의 거처로 심장을 지목한 옛 조상이 적의 심장을 도려내는 것보다 머리 떼기를 선호한 점, 참수 관행을 계승한 현대의 흉악 범죄가 여전히 건재한 점. 설마 이들이 뇌신경학의 진리를 직감으로 터득한 건 아닐 테다.
큼직한 몸통으로부터 왜소한 머리 부위만 분리시키는 참수는 거대한 예하 부대와 소규모 수뇌부를 잇는 지휘라인을 끊는 것 같은 효과를 지닌다. 뇌신경학을 이해 못한들 참수의 가시적 효과에 대한 공감대는 두텁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요 인물 참수형의 결말은 잘린 적장의 머리를 군중이 볼 수 있도록 높이 들어올리는 의례로 매듭된다. 잘린 머리에서 그 머리를 쳐올린 자의 머리로 실세가 옮겨졌다는 의미심장한 제스처. 역대 프랑스 왕 가운데 유일하게 공개 (기요틴) 처형된 루이 16세의 잘린 목은 프랑스혁명과 맞물리며 공동체의 동력이 왕정에서 의회권력으로 넘어간 시대상황을 선포하기에 가시성과 유용성 모두에서 적절했을 것이다.
한편 잘린 목에서 분수처럼 솟는 피와 몸통과 머리가 분리된 흉측한 인체 몰골은 가해자의 무자비한 권능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한다. 때로 그것은 가해자에게 ‘현대적 합리성’과 소통 불가한 ‘고대적 신성’의 이미지를 새긴다. 말이 통하는 상대보다 안 통하는 이가 더 두려운 법. 드물게 보도되는 참수 사건이 대개 미개한 아랍권의 비정부단체와 범죄 집단에 집중된 요인도 이 때문이리라. 소리없이 적을 제거하는 최첨단 살상 무기가 보급된 시대에 애써 낡은 연장으로 요란스런 처형을 고집하는 배경에 고대 의례의 힘이 여전히 잘 먹히는 세간의 정서가 버티고 있다.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 귀퉁이에서 메두사의 잘린 목을 높게 쳐든 페르세우스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신화의 한 장면을 재현한 동상은 미개와 문명을 가로지르는 인류 폭력의 본질을 허구라는 양해하에 미화한다. 아름답다 진정. 전세계 관광객은 자신의 가해 욕망과 피해 공포를 나란히 함의한 동상 아래서 오늘도 기념사진을 촬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