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8일부터 22일까지 경복궁이 닷새 동안 야간 개방되었다. 조명이 설치된 경회루는 그 자체로 한폭의 그림 같았다.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의 이소라식으로 말하면 이런 진부한 표현은 퇴출되어야 마땅할 테지만…. 경회루의 고고한 아름다움 앞에 참신함이라는 단어야말로 퇴출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가능하다면 야간 조명도 없이 달빛만 의지해 태종 12년(1412) 4월2일에 완공되었던 모습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보는 편이 좋을 테니. 이 글을 쓰는 19일 현재 상황으로는 주말에 비가 예보되어 있는데 가능하면 폭우가 내리길 바라고 있다. 낮에는 폭우가 쏟아지는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의 박석을 보기 위해서, 밤에는 (비가 내려서 줄어든 방문객 사이에서) 경회루의 호젓함을 조금이라도 즐겨볼까 해서다.
경복궁 타령이 시작된 이유는 순전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6> 때문이다. 1권으로부터는 18년, 5권으로부터는 10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유홍준 교수는 문화재청장을 지냈고, 그의 임기가 끝날 즈음 남대문은 불에 타 사라졌다. 오랜만에 새로 만나는 6권은 그 시절 이야기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홍준 교수가 문화재청장 시절에 진행했던 광화문 복원, 광화문 광장 조성부터 경회루 누마루 길들이기까지의 뒷이야기가 비중있게, 책 가장 앞머리에 실려 있다. 힘차게 걸으면 몇 시간도 안 걸릴 경복궁을 구석구석 살펴가며 며칠이고 몇년이고 찾고 싶게 만드는 유홍준 교수의 ‘글발’은 여전히 힘이 세다. 근정전에 대해 더 설명하자면 근정전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은 근정문 행각 오른쪽 모서리다. 그곳에 서면 북악산과 인왕산을 양옆에 낀 근정전 팔작지붕이 품위있게 보이기 때문이다(사진도 기가 막히게 나온다). 한편 2004년 갓 문화재청장으로 부임했던 당시의 유홍준 교수가 경복궁 관리소장에게 들은 ‘경복궁은 언제가 가장 아름답습니까’에 대한 답은 이렇다. “비오는 날 꼭 근정전으로 와 박석 마당을 보십시오.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여기에 와보면 빗물이 박석 이음새를 따라 제 길을 찾아가는 그 동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게다가 박석은 햇빛을 난반사하기 때문에 땡볕에도 눈부심이 없다고 한다.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좋다는 뜻인데, 이런 소소하지만 결정적인 지혜와 아름다움은 ‘아는 만큼 보인다’. 이번 6권에서는 경복궁을 시작으로 순천 선암사, 달성 도동서원, 거창·합천, 부여·논산·보령을 찾았다.
ps. 5월18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는 LG트윈스와 KIA타이거즈의 야구 경기가 있었다. 경기 시작 전 묵념이 있었는데, (해태 타이거즈 선수였던) 이순철 해설위원의 말에 따르면 그 일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던 정권하에서는 ‘사람이 모이는 것’을 극도로 꺼려 5월18일에는 광주에서 야구 경기가 열리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1980년 5월18일 광주에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빈다. 살아 계신 분들의 행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