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문학팬에게 지난 몇년은 상실의 시대였다. 시공사의 ‘그리폰 북스’ 시리즈는 중단됐다. 드문드문 SF 클래식을 내놓던 출판사들도 조용해졌다. <별의 계승자>처럼 아찔한 신간을 발간해준 오멜라스(웅진)와 <심연 위의 불꽃1>의 행복한책읽기 SF 총서가 없었더라면 슬픔은 더 컸을 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로운 출판사들이 용맹하게 SF장르에 뛰어드는 조짐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폴라북스가 내놓은 ‘필립 K. 딕 걸작선’이 대표적이다.
먼저 발간된 세권(<화성의 타임슬립> <죽음의 미로> <닥터 블러드머니>)은 국내에 한번도 소개된 적 없는 신간이다. 일단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은 <화성의 타임슬립>이다. 먼저 읽어야 할 이유?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필립 K. 딕 스타일의 책이기 때문이다. 1994년 식민지 화성을 배경으로 한 이 책은 정신분열증의 과거를 잊기 위해 수리공으로 살아가던 주인공이 겪는 우주적 모험이자 내적(內的) 모험이다. 주인공들은 권태로운 화성에서 광기에 사로잡혀가고, 결국 광기는 현실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건 우리에게 익숙한 필립 K. 딕의 ‘실존주의’ 세계다. 무엇이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가. 현실과 망상의 경계는 무엇인가. 만약 당신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나 <임포스터> 같은 필립 K. 딕의 대표작 혹은 <토탈리콜> 같은 할리우드영화들에 익숙한 초보팬이라면 <화성의 타임슬립>은 익숙하지만 무한한 감흥을 전해줄 거다.
나머지 두편 역시 필립 K. 딕 팬이라면 필독과 수집을 동시에 권한다. <닥터 블러드머니>는 핵폭발 이후의 디스토피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로, ‘후쿠시마 이후’ 시대에 읽으면 더 무시무시하다. <죽음의 미로>는 외딴 행성에 고립된 채 살해당하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 어드벤처물인데 신학적인 후기 작품들로 이행하는 일종의 가교다. 폴라북스는 2011년에 10권을 내놓고 2013년까지 2권을 더해서 총 12권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발이지 성사되길 기원한다. 이참에 다른 출판사(문학수첩)에서 나왔지만 아직 절판되지 않은 필립 K. 딕의 대표작 <유빅>도 동시에 권한다.